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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와인 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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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인 척한 고냥이 Apr 05. 2020

봄날의 와인을 좋아하세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매서운 겨울이 물러가고 어느새 봄기운이 만연하다. 따뜻한 햇살은 아직 한기를 머금은 바람을 부드럽게 보듬어 주고, 화단의 관목들과 가로수의 메마른 가지에도 파릇한 봄눈과 화사한 꽃잎을 틔워 낸다. 코로나 19로 봄나들이가 어려운 지금, 봄볕 비치는 창가에 앉아 빌 에반스 트리오(Bill Evans Trio)의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를 들으며 차를 한 잔 마시거나, <건축학 개론>과 같이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아, 그런데 얘기하다 보니 조금 이상하다. <건축학 개론>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 승민(이제훈 분)과 서연(배수지 분)은 첫눈 오는 날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한다. 그들이 처음 만난 건 새로운 학기의 첫 강의실인데, 그렇다면 계절적 배경이 봄이 아니라 가을이다. 생각해 보니 그들이 입었던 옷도 긴소매에 외투까지 걸쳤던 게 봄 옷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봄이라는 착각이 들었을까? 이 영화가 처음 개봉한 것이 봄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관통하는 ‘첫사랑’이라는 소재가 봄과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첫사랑의 추억 자체가 바로 인생의 봄을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봄에 어울리는, 봄을 위한 영화라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와인 중에도 그런 것들이 있다. 다른 계절에 흔히 소개되거나 음용하지만 봄에도 제법 어울릴 만한 와인들. 그런 와인들은 봄을 연상시키는 향기, 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풍미, 그리고 봄 음식과 어울리는 맛을 숨기고 있다. 아래 소개하는 와인들과 함께 새 봄의 기운을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 매년 맞이하는 봄이지만 조금이라도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찾아온 첫사랑의 기억처럼.  



풋풋한 봄 잔디 내음,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신선하고 개운한 소비뇽 블랑은 시원하게 칠링해서 마시면 한여름 더위를 말끔히 씻어 준다. 하지만 가까운 잔디 공원의 봄 피크닉이나 파릇하고 쌉싸름한 봄나물이 올라간 식탁에 곁들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풋풋한 잔디 향과 은은한 미네랄, 상큼한 레몬라임 풍미는 온몸에 봄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추천 와인: Saint Clair, Pioneer Block Sauvignon Blanc(뉴질랜드), L’Arpent des Vaudons Touraine Sauvignon Blanc(프랑스), San Pedro, Castillo del Molina Reserva Sauvignon Blanc(칠레) 



가볍고 영롱한 봄 꽃의 향기, 보졸레(Beaujolais)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의 영향 때문인지 보졸레는 늦가을에 마시는 와인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졸레의 가볍게 떠오르는 꽃향기와 스파이스, 방순한 딸기와 베리 류의 풍미는 따뜻한 봄날의 분위기와도 절묘하게 어울린다. 봄 산행이나 벚꽃놀이에 부담 없이 지참할 만한 와인이다.


추천 와인: M. Lapierre Raisins gaulois, Jean-Paul Brun, Terres Dorees L'Ancien Beaujolais, Louis Jadot Moulin a Vent 'Chateau des Jacques'(이상 프랑스) 



싱싱한 딸기, 그리고 루비 포트(Ruby Port)

주정(酒精)을 강화하여 알코올 도수를 높인 포트 와인은 따뜻한 봄날보다 추운 겨울에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달콤한 베리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 루비 포트는 봄의 제철과일인 딸기와 기가 막힌 궁합을 보인다. 포트 와인과 함께 딸기에 치즈나 생크림을 가볍게 곁들여 낸다면, 정찬의 마무리나 휴일의 주전부리로도 그만이다.


추천 와인: Graham's Fine Ruby Port, Fonseca Ruby Port, Taylor's Select Reserve Port(이상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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