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양조 8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와인의 발상지 조지아는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크베브리(Qvevry)라는 커다란 토기 항아리를 사용해 전통적으로 생산한 개성적인 와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지아 와인의 매력은 단순히 오랜 역사와 독특한 양조방식에만 있지 않다. 다른 한 축엔 조지아만의 독특한 토착 품종이 자리 잡고 있다. 조지아의 테루아는 오랜 세월 개성 있는 토착 품종들을 재배해 왔다. 알려진 토착 품종만 500여 종이 넘으며, 그중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품종이 40~50여 종에 이른다. 이번 글에서는 르카치텔리(Rkatsiteli), 키시(Kisi), 므츠바네(Mtsvane), 그리고 사페라비(Saperavi) 등 조지아를 대표하는 네 가지 토착 품종을 중심으로 조지아 와인을 소개한다. 이들 품종들은 조지아가 오랜 세월 이어온 와인 문화와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네 품종의 특징과 즐기는 법, 푸드 페어링 등을 확인하다 보면 어느새 조지아 와인에 친근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채로운 스타일, 르카치텔리(Rkatsiteli)
조지아에서 양조용 청포도 품종 중 가장 널리 재배하는 르카치텔리는 깔끔한 산도와 균형 잡힌 바디로 잘 알려져 있다. 청사과, 백도 풍미, 향긋한 꽃향기, 신선한 허브 향이 매력적인 품종으로, 과일 풍미와 산미의 조화 또한 뛰어나다. 단독으로 양조하기도, 다른 품종과 블렌딩 하기도 좋다. 어떤 양조방식을 사용하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다재다능한 품종이다. 현대적인 스타일은 가볍고 상쾌해 가벼운 샐러드나 핑거 푸드, 신선한 해산물 등과 잘 어울린다. 크베브리에서 반면 껍질과 함께 전통 방식으로 양조한 와인은 은은한 타닌과 비교적 깊은 구조감이 느껴져 와인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굴전이나 새우튀김 같은 해산물 요리, 향신료가 두드러지는 아시안 푸드, 모둠 치즈 등과 곁들이기 좋다.
향기의 매력, 므츠바네(Mtsvane)
므츠바네는 여러 변종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므츠바네 카후리(Mtsvane Kakhuri)와 고룰리 므츠바네(Goruli Mtsvane)다. 일반적으로 므츠바네라고 하면 '카헤티에서 온 므츠바네'라는 뜻의 므츠바네 카후리를 의미한다. 조지아 청포도 중 가장 향기로운 품종 중 하나로 꽃향이 화사하게 피어나며, 사과, 배, 백도, 시트러스 등 은은한 과일 풍미가 특징이다. 피니시에 가볍게 남는 짭조름한 미감도 매력적이다. 고룰리 므츠바네는 '고리(Gori)에서 온 므츠바네'라는 뜻이다. 므츠바네 카후리보다 더 섬세한 열대과일 아로마와 라임 향이 특징이다. 고룰리 므츠바네, 므츠바네 카후리 모두 산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산소를 차단해 조심스럽게 양조해야 한다. 종종 르카치텔리와 블렌딩 해 구조감과 활력을 더하기도 한다. 크베브리를 사용해 전통적으로 양조한 와인은 살구와 복숭아, 구조감이 좋은 와인이 된다. 르카치텔리에 비해 복합미는 다소 약하지만, 온화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친근한 느낌을 주는 와인이다. 그린 샐러드, 프레시 치즈, 신선한 해산물 등과 잘 어울린다. 너무 맵지 않은 동남아 음식이나 카레 등과 마셔도 좋다. 므츠바네라는 이름에는 '젊고 신선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특유의 아로마와 산뜻함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피크닉이나 캠핑 등에 가져가기도 좋은 와인이다.
부활한 보석, 키시(Kisi)
한때 사라질 뻔했지만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품종이 바로 키시다. 키시는 향긋한 플로럴 아로마가 밀도 높게 드러나며, 시트러스와 후지 사과, 서양배, 완숙 풍미가 매력적인 품종이다. 양조 방식에 따라 중장기 숙성 또한 가능한 잠재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배가 어려워 거의 멸종 위기에 몰렸었다. 하지만 조지아 와인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증가하며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이름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적으로 양조한 키시는 화려한 꽃향기와 시원한 배, 감귤류의 풍미가 특징이다. 크베브리를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양조하면 완숙 살구, 복숭아 같은 완숙 핵과 풍미와 건포도 같은 건과, 호두 같은 견과 뉘앙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양한 허브를 활용한 요리, 참깨 소스나 견과류를 사용한 요리와 좋은 궁합을 보인다. 인삼 풍미가 드러나는 삼계탕이나 각종 약재를 사용한 연포탕 등 국물 요리와 함께 마시기 제격이다. 피칸 파이, 초콜릿 케이크 같은 고소하고 진한 풍미의 디저트와 곁들이기도 나쁘지 않다. 키시의 다채로운 풍미와 견고한 구조감, 세련되고 우아한 스타일은 많은 애호가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다만 생산량이 많지 않아 아직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발견한다면 꼭 마셔 보길 강력 추천한다.
강렬함의 대명사, 사페라비(Saperavi)
조지아를 대표하는 레드 품종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사페라비를 언급할 것이다. 사페라비의 검은빛 진하게 감도는 루비 레드 컬러는 잉크처럼 짙다. 껍질뿐만 아니라 과육에도 붉은 색소가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페라비는 짙고 불투명한 색을 띠며, 와인 글라스에 따르는 순간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페라비는 기후와 토양 적응력이 뛰어나 조지아 전역에서 재배한다. 또한 양조 방식과 떼루아에 따라 놀랄 만큼 다양한 스타일이 나온다. 전통적인 크베브리 양조에서는 풍부한 타닌과 균형을 이루는 산미가 견고한 구조를 형성하며, 토양 내음과 스파이스 뉘앙스가 복합적인 풍미를 형성한다. 현대적으로 양조한 사페라비는 블랙베리, 블루베리, 자두 같은 과일 풍미가 풍성하게 드러나며, 숙성하면 가죽, 담배, 감초, 흑후추 같은 복합적인 향으로 발전한다. 어릴 때 신선한 과일 풍미를 즐겨도, 와인에 따라 수년에서 수십 년 숙성 후 다층적인 풍미를 즐겨도 좋다. 어떤 스타일이든 육즙이 풍부한 고기 요리와 아주 잘 어울린다. 가벼운 스타일이라면 양꼬치나 구운 돼지갈비, 고기 스튜 등과 결들이기 좋다. 조금 더 묵직한 스타일이나 크베브리에 숙성한 사페라비는 두툼한 쇠고기 스테이크, 프렌치 렉, 바비큐, 소갈비찜 등과 잘 어울린다. 숙성 치즈나 버섯 요리와도 좋은 궁합을 보인다. 진한 레드 와인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할 품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