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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타 May 25. 2021

한 소녀의 삶이 내 안에 육박해 들어 온다는 것

영화 로제타,1999 , 다르덴형제

삶이 힘들어 더이상 견딜수 없다 생각될 때


199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 여우주연상 (에밀리 드켄)

1. 소녀가 마구 뛰어간다. 뛰어가는 소녀뒤에 바짝붙은카메라. 나도 그 소녀처럼 숨이 거칠어진다. 나오지 않는 수도 꼭지를 발로 차고, 남자에게 술을 사기위해 몸을 팔려던 엄마에게 술병을 뺏어 던져버린다. 이 소녀가 있는 지금 이 곳은 어딜까.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바닥에 같이 한참을 나뒹굴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소녀는 지금 화가 치솟아 있다는 것을.

2. 소녀는 방금 회사에서 짤리고 오는 길이다. 3개월 수습을 못 채우고 동료의 비방으로 해고된다. "내가 왜 나가야하죠? 전 돈이 필요해요" 돌아오는 대답.  "수습이 끝났잖아" 소녀는 버티다 결국 경비에게 끌려나온다. 소녀의 이름은 로제타이다.
알콜 중독인 엄마와 함께 난방과 수도시설도 안되어있는 트레일러에 살고 있다. 주워온 옷가지들을 되팔아 연명한다.
로제타의 유일한 꿈은 직장을 갖는 것이다. 언제든 짤릴수 있는 알바가 아니라 월급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무슨 짓이든 하고 싶어한다. " 시궁창에서 벗어날수 있어, 정상적인 삶을 원해" 중얼거리는 그녀. 살기위해 악에 받친 몸을 잠시 누일때조차 그녀와 함께 나는 쉬지 못한다. 꽃다운 19청춘이라던가. 밥벌이에 청춘을 바친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밥벌이조차 전쟁처럼 남을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구해야하는 청춘이 있다.

3. 청년실업.  벨기에 같은 유럽 복지국가도 장기불황에 신규일자리는 하늘에 별따기인가보다. 더구나 지방 소도시는 말할것도 없다. 벨기에 최하층빈민소녀는 이렇게 굶기를 밥 먹듯하다 겨우 와플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던중 일자리를 구했다 그런데 여기도 삼일만에 사장아들에게 뺏기고 만다. 유일하게 로제타를 친구로 대해주던 로케의 일자리를 뺏고 싶어 로제타는 물에 빠진 그를 구해주길 망설인다. 삶이 그녀를 시궁창에 쳐 박는다. 아니 본래부터 시궁창같은 삶이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때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4. 다르덴형제는 대표적인 리얼리즘 영화작가이다. 그들의 영화< 약속> , <더 차일드> <로나의 침묵> <자전거 탄 소년>에서도 일관되게 하층계급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과 자기 선택을 영화의 주제로 그려갔다. 돈이 곧 주인공인 비정한 세계와 희망없는 미래의 가능성을 과감히 생략된 다큐적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계승한 듯한 영화미학은 소녀의 얼굴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현실이 더 내밀하고 정교하게 체감되는 현실이 된다면 그건 아마 다르덴형제의 마술같은 리얼리즘적 형식에서 기인할 것이다. 비슷한 좌파감독 켄로치의 리얼리즘이 극화된 세계에 살고 있는 인물의 이야기를 최대한 리얼하게 그려내는 리얼리즘이라면 다르덴 형제는 카메라에 부과된 한계를 인정하는 리얼리즘이다.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 한대가 확보하는 인물과의 근접한 거리는 자칫 지루할 법한 스토리에 스릴러장르에 버금가는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나는 잠시도 소녀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5. 만취해 길에 쓰러져 있는 엄마를 겨우 집에 누이고 자살하려 가스를 틀어놓고 잠드려는 순간, 가스가 떨어진다. 어떨 수 없이 무거운 가스통을 들춰업고 오는 길 내내 , 낑낑거리는 로제타를 잡아내는 롱테이크씬에선 이제 끝장내고 싶은 소녀의 힘든 삶이 나에게 육박해 들어오고만다. 그 순간 느닷없이 올라가는 엔딩크레딧!! 언제나 다르덴형제의 영화는 모든것이 폭발되는 정점에서 끝을 내버린다. 나머지는 영화를 보고나선 관객들이 책임지라는 듯이.


6.  어떤 이들의 삶을 한 없이 슬프게 만들어 버리는 영화는 그 삶을 영영 슬픈 삶으로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다. 그러기에 어쩌면 우리는 동정의 눈물이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하는 강력한 휴머니즘, 아마 로제타는 가스통을 부여잡고 자살대신 삶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다시 살게 될 것이다. 그럴거다. 결말은.


ps. 이 영화의 대중적인 상영으로 벨기에 청년실업구제법인 "로제타플랜"이 실행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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