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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여전하네. 추위 타는 거."
오랜만에 만난 사장님이 춥다고 외투를 주워 입는 나를 보고 말했다.
17년 전에 입사했던 회사.
전에 다니던 회사도 아니고, 그전에 전에 다니던 회사다.
예전과 달리 희끗희끗한 사장님의 옆머리와 익숙한 사무실 풍경이 긴장됐던 마음을 풀어지게 했다.
"왜 얘기가 달라진 거예요? 단순 재택 알바라더니..."
사장님은 이번 겨울 동안만 일을 도와달라 부탁하셨다.
단순한 재택 알바라 생각하고 서버와 파일 확인 겸 인사하려고 들른 거였는데 갑자기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총괄을 맡으라고 하신다.
"나도 갑자기 생각난 거야. 오늘 갑자기."
출퇴근 거리가 멀어 거절하려고 했지만 사장님의 아련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직원들.
그건 아마도 전쟁 같았던 워킹맘 생활을 떠올리게 했다.
퇴사 후 2년간, 나는 집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아니, 거의 집안에만 있는 수준이었다.
가끔 병원에 가거나 지인을 만나러 나갈 뿐, 운동을 다니거나 산책을 하거나 정기적인 외출은 전혀 하지 않았다.
쇼핑도 점점 귀찮아 인터넷 쇼핑으로 돌아선 지 오래다.
퇴사 직전까지 아픈 몸을 끌고 출근해 숨 쉬는 것도 벅찬 상태로 하루 종일 앉아 스트레스와 싸우며 일하던 기억들 때문인지, 집에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다.
다들 그런 나를 보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좀 나가라고.
제발 밖에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라고.
운동이라는 말에 나는 중고로 들인 워킹머신을 날마다 타고, 언니가 안 쓴다는 스텝퍼를 들였다.
"운동하니까 됐지? 집에서 하잖아?"
"그게 아니라 나가서 햇볕을 쬐라고!"
뭐든 내 마음대로 하게 두는 남편도 나가서 활동하라는 말을 자꾸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집에 있는 것이 좋다는데 왜들 그렇지?
내가 못 나가는 게 아니라니까?
안 나가는 거야.
난 정말 진심으로 밖에 나가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나 혼자 문제가 없다고 여길 뿐, 다들 같은 말을 하니 조금씩 문제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가지는 않았다.
이런 내가 조금씩 불안해졌다.
그런 와중에 사장님이 손을 내민 거였다.
그래, 2년간의 칩거 생활에 변화를 주라는 하늘의 뜻인가...
나는 등 떠밀리는 마음 반, 이제 조금 나가봐도 되겠다는 마음 반으로 사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12월 말이면 일이 끝날 예정이라 부담이 덜하기도 했다)
나의 긍정적인 답을 들은 사장님이 싱글벙글하고 계실 때 남자애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인사해. 전에 일했던 직원. 이제 같이 일할 거야."
내 밑으로 일할 아르바이트생이 3명 있다고 하더니 그중 하나인가 보다.
"미인이지? 앞으로 말 잘들..."
"악!"
사장님 말이 끝나지도 않은 그때, 나는 별안간 우체통과 '깡' 소리를 내며 옆머리를 부딪혔다.
내 머리높이에 매달린 우체통이었다.
다행히 철제 우체통은 멀쩡했으나 내 사회적 지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이 이상한 소리 하니까 부딪혔잖아요!"
괜히 사장님을 탓하며 창피함을 숨겨봤다.
저 남자애에게 나의 첫인상은 '가만히 있는 우체통과 박치기한 아줌마'가 되었다.
앞으로 차암 존경스러운 상사가 될 것 같다.
고오마운 우체통.
이렇게 된 관계로 다음주부터 12월 말까지는 매우 매우 바쁠 것 같습니다.
출퇴근을 하면서, 저녁이나 주말에는 남편이 주는 일을 하고, 살림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엄마 찬스, 시어머니 찬스를 쓸 수 없어요)
브런치에 글을 얼마나 쓸 수 있을지, 얼마나 읽고 댓글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연재하려고 계획하던 글은 목차까지는 짜놓은 상태인데 어떻게 될지 미지수네요...
일기라도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쓰다가 잠들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아마도 당분간 독자모드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그동안 제가 댓글을 쓰지 않더라도 라이킷을 눌렀다는 건 글을 읽고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왜 얘는 글은 안 쓰고 라이킷만 누르고 다니냐?'라는 생각하기 없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