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넘치는 곳에 살아요

by 윙글

11월 03일


새로운 일터에 자리 잡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사장님의 농담에 맞장구를 치며, 낯선 프로세스를 익히고, 어린 동료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새삼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 날에는 가벼운 사람으로만 보였던 사장님의 우스갯소리들이 이제야 따뜻한 배려로 느껴졌다.

그 가벼운 말들이 주는 편안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장이라는 직위가 주는 불편함.

어느 틈엔가부터 숨 쉬듯 당연해지는, 시키지도 않은 눈치보기.

적어도 나에게 사장님이나 클라이언트들은 그랬다.


그것을 조금씩 녹이는 사장님의 웃음소리와 농담, 그리고 자잘한 배려들.


눈이 건조하다며 인공눈물을 찾는 직원의 목소리에 말없이 커다란 가습기를 꺼내와 깨끗하게 세척해서 틀어준다.

카페인을 못 먹는 직원을 위해 디카페인 커피 캡슐을 구매하고, 직원들 키보드를 전부 키감이 좋은 파스텔 톤 키보드로 교체해 주었다(키보드가 예뻐서 일할 맛이 더 나는 것 같다).


그런 사장님의 배려를 느끼면서 부담스러울 거라 예상했던 출근길이 많이 무겁지 않았다.

어릴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때의 나는 흡사,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으므로.




오랜만에 돌아온 회사는 사용하는 프로그램과 기능이 전혀 달라져 있었다.

40이 넘은 나이에 모른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기만 했는데, 직원들의 편안한 분위기에 날을 세운 자존심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직원들은 나에게 벅찬 기대를 하지도 않고, 무거운 짐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내 일이 더 급하다고, 나는 책임지기 싫다고, 내 밥그릇 챙기기 급급한 직원들이 아니었다.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모르는 것을 질문했다.

알려주고 도와주고...

틀린 것은 보완해 주고 미안해할 줄 아는,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투덜대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아르바이트생 아이들과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간식을 나누어 먹고 수다를 떨었다.

어째, 여기 있는 20대들은 다들 연애 휴지기에 들어선 지 오래였다.

사무실 터가 문제인 것 같다고 사장님께 슬쩍 건의를 해보았지만, 사무실을 이전하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출퇴근이 너무 멀어요...).


20대들이 모이니 전여친, 전남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유부녀인 나도 전남친(남편) 이야기를 살짝 늘어놓았다.

태백산맥 골짜기만큼의 세대차이가 느껴졌지만 남녀 문제는 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아직은 공감대가 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회사에 적응하는 동안 저녁이면 아이들 밥과 청소, 빨래를 하고, 주말에는 재택근무를 준비하기 위해 프로그램 환경을 맞추느라 또 책상 앞에 앉았다.

남편의 일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마취총을 맞은 사람처럼 낮잠을 잤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나는 브런치에 글을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글을 쓴다는 생각은커녕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것도 벅찬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브런치 또한 나에게는 배려가 가득한 곳이었다.


내가 '당분간 글을 쓰지 않겠다는 글'을 발행해도 좋아요를 눌러주며 응원을 해주는 곳.

생업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 쉬엄쉬엄하라고 걱정해 주는 곳.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까 걱정할 마음을 어찌 아셨는지 나의 부족한 글을 기다려주신다는 댓글을 주시는 곳.


어디를 가도 배려가 가득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무심히 지나치던 예전에는 몰랐을 일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있으며, 나는 배려가 넘치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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