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오는 인정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매슬로가 말하는 인간의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모두에게 태어나면서 존재하는 욕구이기도 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는 지금의 기분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기도 하다. 이는 구성원들의 자질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의 이면에 그러한 구성원들을 이상하리 만큼 이끌고 가는 리더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중국의 장왕은 부하 장수의 실수를 덮어줌으로써 전쟁에서 자신의 목숨을 건지는 포용의 정치와 리더십을 보여주었으나, 아쉽겠도 내가 있는 이곳의 리더는 포용보다는 잘못을 들춰내기에 급급하며, 본인의 책임을 떠넘기기에 안달이 나는 형국이다.
알아주지 않지만, 묵묵히 본인의 일을 하면 언젠가는 누군가는 알아주겠지라는 나의 생각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 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화도 나고 갑갑한 마음이 든다. 마치 모든 것이 본인의 업적인양 꾸며되는 환경 속에서 앞으로 무엇을 더 한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의문마저 들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신앙심에 빚대어 보고, 스스로에게 자문을 한다. 과연 너는 일을 할 때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함으로 그 일을 한 것인가 아니면, 너에게 주워진 일을 하기 위함인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너의 즐거움을 찾기 위함이며, 너의 책임 맡은 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에 대한 스스로의 답은 물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성에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위함이 있는 잔인하지만 이중적인 생각이 있다.
내 맘속 깊은 곳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맘은 과연 없었는가 하고, 점검을 해 본다.
해외생활에서 매일 얼굴을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환경 속에서 동상이몽의 차 안에서 뒷담화는 너무나 빠르게 드러나고 그로 인한 감정의 소모가 너무 많이 된다.
누구나 영악하게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는 삶을 산다고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조차 없는 소위 말하는 진흙탕 속의 개싸움을 하려 한다. 그러기에 그 진흙탕을 피해 가고 있지만, 그러기에 보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마치 벙어리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한 가지 소망은 언젠가 지금의 고통과 지금의 노력을 누군가는 알아볼 수 있겠지라는 인간의 헛된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아 결코 세상은 TV 속의 드라마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것을 깨닫고 산다.
그럼에도 버티는 것은 무엇인가? 왜 넌 여기에 있는 것인가?
그 물음을 계속하면서 오늘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