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민족, 그러나 변화에 맞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아쉬운 나라. 과거 조선에 대한 평가를 볼 때 우리는 이렇게 평가를 하곤 한다.
우리는 이렇게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면서,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맞추어 나가는 것에 대하여는 옛것의 소중함을 지켜야 한다는 틀에서 버리지 못하는 특성을 지니고도 있다. 옛것의 소중함과 겸손의 미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삶의 틀에서 겸손과 옛것의 소중함이라는 갖다 붙여서는 안될 본인의 잘못된 틀로 본인의 아집과 고집만 고수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를 하며, 바둑은 이미 컴퓨터 알파고라는 AI에게 더 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지금의 시대는 본인의 얄팍한 지식이 더 이상 무기로 사용되는 시대는 아니다. AI를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 AI를 활용하는 시대임에도 본인의 아집은 더 이상의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알파고를 나무라며, 기계가 인간을 이긴다며 한탄을 하며, 오류라도 나오게 되면, 마치 그 오류를 기다린 마냥 기뻐한다. 마치 본인이 예전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치 본인의 과거 지식이 전부인양 읊어된다. 끝도 없는 카톡과 어불성설의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말이다. 혹자는 이런 행동을 두고 본인이 힘이 부치면 제풀에 꺾인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카톡을 읽지 않고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마치 성경의 글귀처럼 칭송한다.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나오는 과거의 지식을 본인의 수고가 없이 얻기에 말이다. 그 지식도 이제는 더 이상의 효용이 없어짐에도 그것조차 모르고 말이다.
언젠가는 지금의 시련이 지나가리라 본다. 다행히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지금의 고통은 추억이란 말도 안 되는 단어로 둔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시련과 고난이 언제 지나갈지 예상을 할 수도 없다.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말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것을 알까? 아니면 본인의 다른 논리로 자기 합리화를 만드는 것일까? 대부분 모르기에 다시금 상처를 주는 말을 쉽게 하면서, 본인은 할 말을 하니 편하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본인이 할 말을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함부로 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대수롭지 않게 그런 걸로 상처를 받냐고, 너무 당신이 민감하고 센치하다고 그러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말을 한다. 과연 이런 논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과거 선조들의 겸손과 미덕을 중요시 여기면서, 선조들의 미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과거에 머문 그러면서 본인의 무례함을 인정해달라는 이런 사고방식은 어떻게 지니게 되었을까?
어렸을 적, 지금보다도 20년 전쯤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이를 먹을 때 멋있게 먹자, 달리 말해 늙어질 때 추해지지 말고, 멋있게 나이 들게 말이다. 당시 생각으로는 그렇게 먹기 위해서는 삶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을 생각을 하였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사회에 나와 보니 삶의 여유가 없어도, 멋있게 나이를 먹을 수 있고, 멋있게 늙는다는 거,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한해 한해 나이를 먹는 것이 멋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그리고 여유와는 반비례로 나이를 악랄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본다. 한참 어린 직원들과의 말꼬리 싸움, 큰 것을 보는 눈을 기르지 못하고 매일 카톡으로 남을 비방하는 사람.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는 절대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만 맞는 말이다. 지나가는 시간에 빚을지고, 하고자 하는 말을 마치 장에서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절대 나이를 먹는다고 볼 수 없다. 그건 시간낭비이다. 주어진 시간이 모두 같다고 보면, 그렇게 시간낭비를 하는 그 사람의 나이는 어쩜 아직도 유아기의 손을 빠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