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악인은 악하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나와 다르다고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분석하거나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렇게 악하기에 그냥 악한 것이다. 또한, 선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며 그들은 절대 그들의 행동에 반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악함으로 나오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그 악함을 해석하려 하거나,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다.
일편생을 그렇게 삶을 살아간 사람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냐며 물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물어본들 깨우치질 못한다. 그리고 깨우치길 바라는 마음은 헛된 허망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과의 싸움에서 같이 상대하려 한다면, 선한 사람은 백전백패일 것이다. 그건 선한 사람의 전공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선한 사람의 전공분야로 싸움을 해야 이길 수 있다. 그것은 선으로 악을 덮는 것이다.
물론 선한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기까지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선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적으로 참으라는 것은 아니다. 선한 사람이 바깥에서 보기에는 무조건 참는다고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 참는 것은 선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다.
악함을 악함으로 대하지 말고, 악함에 반응하지 말고 지금의 선한 길을 가라는 것이다. 그 악한 사람들의 악함을 고민하고 논의하고 있을 시간에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선한 사람들은 시간과 감정에 손해를 가져온다.
왜 이런 악한 사람들로 인하여 선한 사람들의 시간과 감정에 손해를 가져와야 하는가? 그러므로 막연하게 참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선한 싸움이란,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을 상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악하다 라는 이 내용은 이번 주 설교 말씀이었다. 내가 믿는 신앙심에 기대어 보면, 악한 사람들은 서로가 악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 스스로의 싸움으로 그들 스스로가 무너지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로서 악한 사람들끼리 분쟁하게 두고 봐야 한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울부짖어라. 그러고 선한 사람은 현재 하고 있는 선한 일을 계속하면 된다.
선한 일을 함에 있어서, 악한 사람들로 인하여 지금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과연 누가 좋아할 일인가? 선한 사람이 좋아할 일인가 아니면, 악한 사람이 좋아할 일인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막상 억울한 일이 생기면 먼저 화부터 나고, 그 억울한 일에 대해서 답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인내하자 그리고 기다려 보자. 막연하게 버틴다는 의미가 아닌, 곧 있을 악한 사람들의 몰락에 대해 기대하면서 기다려 보자. 참아내 본다는 단어를 싫어한다. 참아낸다는 거 그것은 지금의 억울함을 견딘다는 것인데, 난 그 억울함을 견디기 싫다.
기다려 보는 것이다. 때가 되면 악인들은 몰락하기 마련이고, 악은 절대 선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악이 선을 이긴 혼돈의 카오스는 이제까지의 시대에서 단 한 번도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려 본다.
악인들이 더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끝이 다가옴을 알고 더 발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든 해뜨기 전 가장 어둡다고 한다. 그 해뜨기 전 가장 어두움에 있는 지금 난 계속 선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계속 선한 싸움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