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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 것이었다.

by 김휘성

어린 시절, 산골짜기 마을에 살던 나는 SF 과학 영화와 신비한 우주 다큐멘터리에 심취해 있었다. 달에 발자국을 남긴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뛰게 했고, 캄캄한 밤이 되면 시골 마을의 정적 위로 쏟아지던 별 빛은 마치 나에게 속삭이듯 무한한 가능성과 미지의 세계를 품은 하늘로 이끌었다. 좁은 방 안 작은 텔레비전 화면 너머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솟아오르는 우주선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나도 저 세계에 가보고 싶다고. 나도 언젠가는 저 우주에 발을 딛고, 지구라는 별을 벗어난 광활한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그때부터였다. 나는 미국 NASA에서 일하면 언젠가는 우주로 나갈 수 있으리라 믿기 시작했다. 영어도, 수학도, 물리도 제대로 모르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어떤 것만 바라봐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내 마음속 우주는 그렇게 조금씩 그려졌고, 현실의 벽 따위는 아직 나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나 몸이 자라고 머리가 영글어 가면서 나는 서서히 그 현실의 벽에 갇히기 시작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고, 영어는 멀고 낯선 언어였으며, 우주비행사가 되려면 단순한 꿈 이상의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자꾸만 현실적인 조언을 보태주었다. 극한의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신체 조건이 어떻고, NASA를 들어가기 위한 학벌 조건이 어떠하며, 영어와 각종 외국어에 능통해야 하고, 또 우주 비행사가 되려면 조종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고, 우주에서 생활하려면 죽음에 가까운 특수한 훈련이 필요하다느니. 나는 그 현실적인 말들 앞에서 점점 꿈을 작게 만들었다. 조금씩, 내가 삼킬 수 있을 만큼 작게 또 작게 잘라냈다. 나의 손이 닿을 수 있는 범위 안으로 꿈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주는 너무 멀리 있다. 우주까지 가지 말고 차라리 하늘을 가까이서 만질 수 있는 일을 하자.

덕분에 나는 우주를 그리워한 지상 위의 하늘 수호자, 항공 정비사가 되었다.

지금 그 사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지금 내 삶에 만족하며, 내가 택한 항공정비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항공 정비는 단순히 기계를 고치는 일이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일이자,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이끄는 일이기도 하다. 그 책임감은 때론 무겁지만, 내가 지닌 기술과 경험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다만,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지레 겁먹고 내려놓은 그 첫 꿈에 대한 이야기다. 결코 누가 나에게 그만두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나를 가로막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스스로 내걸었던 제약이었다. 결국 내 한계는 내가 정한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한계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벽이 아니라 내가 마음속에 세운 경계선이었다. 그것은 결국 내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제한이었다. 어쩌면 그 당시 나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용기나 대단한 실력이 아니라, 한 발짝만 더 나아가 보려는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인간의 고통이나 불행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문제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라고 했다. 내가 어렵다고 여겼던 조건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목표들은 결국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 속에 불가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는 변하지 않았고, 미국도 그대로였다. 오히려 변한 것은 나였다. 내가 그 꿈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어 버렸던 나의 판단이었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고 했다. 지금 나는 항공 정비사로서 나의 역할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으며,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가 한계를 정하는 순간, 나의 가능성은 거기서 멈춘다는 것을. 세네카는 “어려움은 우리가 용기를 시험할 기회”라고 했다. 내가 어렵다고 생각한 그 벽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넘지 못할 벽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넘고자 하는 용기를 잃는 것이다. 어려워도 할 수 있다.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면 나의 한계선은 점차 높아진다. 그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 자체가 삶을 더욱 넓고 깊게 만든다.
삶에서 닥치는 현실의 어려움 앞에 움츠려 들지 말자. 적어도 스스로 내 한계를 정해두고 시작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나의 용기를 시험할 기회로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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