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 전후 펼쳐지는 나사로 부활사건에서 나사로는 죽은 지 4일째 살아난다. 예수님은 그가 병들었다는 말을 들으셨음에도 굳이 ‘지체’ (요 11:6)해 가시며, 나타나신다. 심지어 마르다는 예수님을 책망(요 11:21) 하기까지 한다. 예수님은 그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음을 확인(요 11:17,39) 하고 나서야 나사로를 부르신다.
여기서부터 내 고민이자 의문이다. 왜 4일일까? 2일, 5일도 있고, 예수님의 부활과 상응하려면 3일이 가장 좋지 않았을까? 성경에는 정확한 이유가 없고, 몇 가지 서칭을 통해서 얻은 내용은 ‘당시 유대인은 사람이 죽으면 3일 정도는 영혼이 머물 수 있다고 믿었지만, 4일째는 완전히 죽은 것으로 간주’, ‘바리새파는 선하게 살았을 경우 소생하여 다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고(단, 3일 이내여야 함), 악하게 살았을 경우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된다고 믿었다고(요세푸스, 유대 고대사)한다. 그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이 4일째 오셨을 때 굉장히 슬퍼하고 실망한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예수님은 당시의 바리새파 또는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3일 이내’라는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한 것으로 느껴진다. 나 또한 훈련을 통해 많이 변하고 깨어졌다고 생각하나, 또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도그마 (dogma)가 있지는 않은 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무조건 믿어야 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인식의 한계,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불철주야 동분서주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내가 다시금 깨닫고 나아가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