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라떼 안에 담긴 마음

그 라떼가 아니구요

by 로렐라이언덕

이제 좀 철이 들었는지

부엌에만 가면 엄마 생각이 난다.


얼마 전 새로운 식세기를 설치해 그릇만 탈탈 털어 넣으면서는 설거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그때 엄마는 포대기에 아기까지 업고 있었는데..

괜스레 미안해졌다.


캡슐 하나만 넣으면 커피를 만들어 주는 머신을 쓰면서 그 시절 엄마에게 이 한 잔을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생각한다.

작은 스푼으로 커피알을 세어가며

'물은 어디까지 부어야 해?' 묻던 내 어린 시절.

그 앞에 서 있던 엄마는 맑간 얼굴이었지만

항상 지쳐 있었다.


"나 때는 말이야~ 설거지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갔다, 너~? 아침에 먹은 거 치워야지, 먹은 그릇들 얼른 씻어서 점심에도 써야지, 점심 먹고 나서 저녁거리 준비하면 너희들 집에 와서 도시락통 산더미처럼 쌓아 놓지, 저녁 먹고 나면 네 가족 밥그릇 국그릇에 요리한 냄비까지!!

와... 이래서 엄마가 밥 먹는 걸 안 좋아했잖니."


엄마가 하지도 않은 말이 엄마의 음성으로 귀 속을 맴돈다. 설거지뿐이었으랴.

분명 엄마는 '으이구, 감사한 줄 알아라.' 한 마디로 끝내겠지만 그 시절을 목격한 나로서는 엄마가 저런 라떼썰을 늘어놓는다 해도 기꺼이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라떼 발언'은 세대 간의 전쟁 선포라며

혀를 내둘렀던 내가 이제 좀 어른이 되나 싶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다.

그 시절 손이 부르트도록 매일 설거지를 해 준 엄마와 엄마처럼 고된 설거지를 하지 않도록 도와준 식세기에게.



아이가 일기를 쓰다가 팔이 아파서 못쓰겠단다. 그냥 타이핑을 하면 안 되냐며.

손을 털어가며 깜지를 썼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보고서도 A4용지에 줄 그어서 비뚤어지지 않게 써 내려갔던 그 시절.


"야~ 엄마 때는 말이야~"


말을 꺼내자마자 아이가 뾰로통하게 허리를 자른다.


"또 엄마 때, 맨날 엄마 때는 엄마 때는"


귓가가 홧홧해졌다.

아.. 나도 라떼를 외치는 세대가 된 것인가.

막상 그 말을 외치는 입장이 되고 나니 조금 억울해졌다.

나 때처럼 고생 안 하는 너희가 얄밉다거나,

뭐 그 정도로 힘들다 하냐는 핀잔을 주려던 것이 아니다.

우리 땐 힘들었는데 세상 참 좋아졌지.. 어쩜 이런 것들이 나왔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편리들을 당연하다는 듯 누리는 세대가 이전 세상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얼마나 감사하며 이 삶을 누릴까 하는 그런 마음이었다.


지금은 아이가 내 말을 끊고,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속으로 라떼를 꿀꺽 삼킨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말이 되지 못한 채 다음 세대를 묵묵히 쌓아 올리는 고됨들이 많겠지.

그래도 언젠가 아이가 부엌에 서서
무언가를 누리며 나를 떠올려 준다면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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