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자녀는 괴로워 2
2학년 학생 20명이 내 교실에 앉아있다. 내 아이와 같은 나이. 담임교사의 눈으로만 학생들을 볼 수가 없다. 내 아이 같아서.
2학년을 선택한 것은 온전히 내 아이를 위한 일이었다. 네가 보는 교과서를 나도 보고, 너 같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너를 더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어서.
막상 교실생활을 해 보니 내 아이보다는 우리 반 아이들이 그 덕을 더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2학년 아이로 인해 우리 반 아이들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적당히 지도하고 넘어갈 일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마음이 쓰인다. 너도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을까, 그때 선생님이 어떻게 해주면 더 위로가 될까 생각하면서.
우리 반을 아들/딸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도 큰 도움이지만 인원이 많다 보니 뺏기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 반나절 이상 학교의 아들/딸들을 위해 전력을 쏟고 퇴근하면 정작 집에 있는 아이에게는 줄 수 있는 힘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가장 에너지 넘치는 시간을 회사에 반납하고 녹초가 되어 아이들을 만나는 건 워킹맘의 숙명이니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문제는 내가 교실에서 만들어오는 '유니콘'(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존재를 뜻하는 말, 엄마들이 쓸 때는 주로 모든 것이 완벽한 이상적인 아이를 뜻함)이었다. 받아쓰기를 할 때는 늘 백점 받는 우리 반 똑순이처럼, 글씨를 쓸 때는 우리 반 한석봉처럼, 문제집을 풀 때는 꼼꼼이 그 아이처럼. 우리 반 운동선수 그 애는 참 자세도 예쁘고 유연성이 좋던데 내 아이도 발레를 좀 시켜볼까.. 걔는 아홉 살짜리가 어쩜 그렇게 넉살도 좋고 성격도 좋은지 어른인 내 눈에도 매력적인데 친구들한테는 얼마나 인기가 많을까, 우리 애도 좀 그랬으면...
내 아이의 비교상대는 '옆 집 사는 그 애'도 '엄마 친구 아들'도 아닌 정체 모를 유니콘이다. 우리 반 아이들의 장점만 모아 만들어진 이상한 존재. 나름 교사라고 대놓고 내뱉지는 않지만 엄마 머릿속의 기준점이 어디쯤인지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 텐데, 이걸 언제쯤 들킬지 조마조마하다. 어쩌면 늘 성에 못차하는 엄마를 이미 알아챘을 수도.
우리 반 아이들을 보듯 내 아이를 바라보고 싶다. 좀 늦어도 기다려주고, 약점보다는 강점을 보고, '괜찮아, 너 잘하고 있어!'를 입에 달고 사는 교실 속의 나를 꺼내 아이에게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