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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Aug 15. 2022

가능성


애매한 인간. 나는 나를 그렇게 바라본다.



지난 겨울, 운 좋게 두 명의 건축가와 한 명의 건축비평가 앞에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금, 한국성’을 단독주택으로 표현해보라는 주제 공모전에 우리 팀은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는 뜻의 ‘사이비(似而非)’를 키워드로 삼아 발표했다. 한 겨울에는 모두가 비슷하게 생긴 검은색 롱패딩을 입으면서 조금은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프라이탁을 사는 한국인들. 방수포를 잘라 만들었기에 모든 제품의 디자인이 다르다는 그 브랜드도 유행이 되어 이젠 유니크함과는 거리가 멀다. 남들과는 다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집단의 눈치를 보는 현상을 두고 우리는 지금의 한국에 대해 ‘사이비적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대체적인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주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지나치게 순진하지 않았나 싶다. 겉과 속이 다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미 옛날부터 있었던 이야기이고, 이미 인식 속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사이비’라는 말이 이 시대에 대한 긍정인지 부정인지 어떠한 태도도 취하고 있지 못하다는 평이었다. 실제 심사위원들이 말을 하진 않았지만 ‘지금’이라는 말에는 현재의 모습을 담는 것은 물론, 미래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 또한 녹아 있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성에 대한 담론을 쌓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작금의 현실을 단면으로 잘라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무도 쉬이 단언하지 못하는 미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볼 수 있어야 했다.



나도 모르게 틀리기 싫어 애매한 태도를 유지했나 보다. 애매함은 내게 도피처였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동시에 가능한 이 양가적인 삶에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두는 것. 애매함은 이도 저도 아니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 이는 확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 비난 속에서 약간의 긍정을 위해 애매한 건 어쩌면 밸런스가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가능성을 열어 두며 많은 옵션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내 삶이 패러독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것을 어찌할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판단을 유보하고자 하면서도 섣불리 판단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웃음과 울음 속 감정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른다. 무엇도 맞지도, 틀리지도 않는 중립적인 상태. 그 속에서 필요한 건 긍정이었지 않았을까.



완결적인 것은 경외감을 표하게 한다. 더도 덜도 필요하지 않기에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좀 더 마음이 가는 건 미숙함이다. 적당한 미숙함은 묘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다음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극적인 장면에서 다음화를 예고하며 끝내는 한국형 드라마가 애를 끓게 하는 이유와도 같다. 미숙함은 가능성을 품고 있기에 미래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래서 완결적 압도감보다는 미숙한 여운이 좋다.


그 속에서 필요한 건 긍정이었지 않았을까.


화려하지 않지만 풍요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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