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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Feb 09. 2021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도

쉰여섯번째 이야기


비록 몇 년 살지 않았지만 삶이라는 게 참 우습다. 많은 사람들인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야’를 모토로 삼고 살지만, 과연 그들의 뜻대로 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도 시련과 실패를 겪으니 ‘뜻대로 되지 아니함’이 주인공으로서의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겠다. 우스운 점은 인간이 본인의 뜻대로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모습이다.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인간은 의미 없이 살지 못해서인 것 같다. 인간은 각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부와 명에, 사랑, 그리고 직업 등 각자가 생각하는 본인 생의 최고 가치들이 있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지 언정 일단은 뭐라도 해보겠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필연, 혹은 우연과 싸운다. 



우연

진로 고민을 하던 친구는 존경하는 교수를 찾아가 물었다고 한다. 교수님은 어쩌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냐고. 질문을 한 친구도 알았을 것이다. 삶에 의미 있는 큰 결정에는 그리 거창한 이유나 계기 따위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교수는 학교에 남았고, 어쩌다 보니 그 분야의 지도 교수를 만나 자신도 그 분야에서 지금까지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떤 이는 공부를 잘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비싼 사립 대학을 포기하고 국공립 대학을 택했다. 또 다른 이는 평상시에는 생각도 없었지만 너무 잘 나온 수능 성적 때문에 갑자기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기도 했다. 누군가는 배우자를 잘 만나 돈 방석에 앉기도 했다. 인생은 너무나도 잔인하지만 순간순간의 선택으로 생각보다 많은 것이 결정된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필연

살면서 문득 ‘이때다’ 싶은 상황이 있었나. 문학 작품을 보거나 아주 가끔 어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직감하는 경우가 있다. 유난히 운이 좋은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은 그 운을 타고나서 앞으로도 계속 운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좋든 싫든 운명이다. 인생이 잘 풀린 듯 보이는 사람을 보면 혹자는 이를 보고 잘 풀릴 운명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꾸준히 성실하게, 착하게 살았으니 그런 풍요를 누려도 된다는 인정과 격려와 함께 말이다. 한 친구가 말하길 부자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남들은 부자가 된 사람을 보고 운이 좋았다든지, 앞으로는 모르는 일이라든지 시기 어린 말을 한다고도 한다. 근데 본인이 보기에는 인생에는 여러 번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 사람은 그 기회를 잘 잡은 것이고, 그것도 능력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우연과 필연, 이를 나누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저 모두 현실의 일부일 뿐인데 말이다.



마블의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14000601분의 1의 확률로 타노스를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말 우연한 기회로 쥐 한 마리가 양자 세계에 갇힌 앤트맨을 이 세상으로 다시 불러온다. 개연성이 떨어진다라는 비판도 받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연처럼 보이는 한 순간만을 살아갈 뿐이다. 어떤 경우의 수가 있을 지 몰라도 우린 매번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선택이 엉켜 서로 영향을 주고 만들어낸 결과가 현실이다. 필자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좋아한다. 쿤데라의 작품은 현실에 집중한다. 농담으로 비롯된 기구한 운명이든,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의 저울질이든, 쿤데라는 그 속에 실재하는 인간의 삶과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그려낸다. 우연과 필연, 가벼움과 무거움, 슬픔과 행복, 그 모든 것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으며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 인생의 일들 전부가 엽서의 농담과 더불어 생겨났던 것인데?
나는 실수로 생겨난 일들이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생겨난 일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느끼며 전율했다.
「농담」, 밀란 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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