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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Feb 02. 2021

건축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피곤합니다

쉰다섯번째 이야기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피곤합니다. 작업량이 많아 밤을 새서 피곤합니다. 온종일 듀얼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와 씨름하느라 피곤합니다. 근데 이보다 더 피곤한 건 건축을 하는 사람들, 그들 자체입니다. 그들의 태도는 미적지근합니다. 세심한 것인지, 둔감한 것인지, 이중적인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건축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건축 얘기만 하면 질색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술자리에서는 매번 건축 얘기만 주구장창 합니다. 경제와 기술, 문화에 모두 해박해야 하며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분야를 아주 골고루 모를 뿐이라는 사실과 박봉을 즐기며 살아가면서 어디가 현실적이라는지 모르겠는 의문만 남습니다. 가장 어이없는 건 그들이 질문을 일삼는다는 점입니다. 질문을 바꿔 말하면 문제인데, 그렇다면 그들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오히려 풀지 못한 문제만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가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고 명언을 투척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무튼 그들이 피곤한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필자는 초중고 12년을 다니며 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앞에 있었고, 어떻게 이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푸는 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피타고라스, 뉴턴 선생님이 주창하신 이 세계의 원리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근데 건축을 배우면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습니다. 이쪽 부류 사람들은 이상하게 문제를 풀 생각은 안 하고 질문만 계속합니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빨리 일 끝내고 집 가서 누워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뭐만 하면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고 좋아합니다. 인생의 반려자, 오랫동안 볼 친구를 구한다면 이쪽 세계에 있는 사람은 피하십시오. 당신 인생에 문제만 제기할 겁니다. 정작 해결해줄 건 아니면서 말입니다. 



장문에 지치셨다면 필자 또한 건축을 배우고 있음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피곤한 족속입니다. 



짧은 식견으로나마 이해한 건축의 본질은 답보다는 질문에 있습니다. 건축은 생각이 물리적 형상을 갖게 된 그 결과물입니다. 질문이 다르면 이에 대한 해답인 건축물도 달라지는 게 당연합니다. 질문은 땅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건축물이 평지와 맺는 관계는 경사진 대지 위에 올려지는 건축물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프로그램, 혹은 용도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사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고, 공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그 둘이 혼재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은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합니다.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건축가의 태도가 드러날 것입니다. 일종의 배려인 셈입니다. 또 확장되어 건축물이 주변 환경, 도시와 맺는 관계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구조와 경제적 문제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건축은 질문투성이입니다. 


건축의 본질은 질문에 있습니다.



늘 제기되었던 건축계의 표절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올랐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돌아오는 말은 ‘건축에도 표절이 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애매합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비슷해야 표절인 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또 그런 모방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공간으로 유명해진 카페를 타 지역의 카페에서 모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뉴스에 잠깐 나오고 잠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보이는 네모반듯한 건물들이 모두 표절이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건축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특정 건축물이 연상된다고 하면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다시 근본적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건축은 그 시작이 질문에 있습니다. 땅과 프로그램, 그리고 사람을 읽어내는 건축가의 예리한 질문이 그것입니다. 질문이 다르면 해답도 다른 게 이치입니다. 어릴 적에 답지를 보고 답을 베끼는 일을 해본 적이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많고 시간은 없고, 무엇보다 귀찮을 때 말입니다. 이는 건축의 본질을 알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존중 또한 결여된 행위입니다. 그래도 답지를 베껴야 하겠다면 무엇보다 조심하십시오. 당신이 보고 있는 답지가 눈 앞에 있는 질문에 대한 정답지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적어도 건축을 배우고 관심이 있다면 스스로 질문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피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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