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네번째 이야기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의 내용을 다룹니다.
여행과 정주는 다르다. 여행은 목적성이 강하고, 시간적 제한이 있다. 반면 정주는 목적보다는 과정에 그 의미가 있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비교적 오랜 시간 지속된다. 그래서 어떤 나라, 도시, 장소를 경험함에 있어 여행하는 사람과 그곳에 사는 사람의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 그 도시를, 그곳을 알려면 그곳에 살아봐야 한다.
NETFLIX ORIGINAL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은 영화 감독 Martin Scorsese와 작가이자 연사이며, 가끔 배우인 Fran Lebowitz의 대화를 통해 뉴욕에 수십년 살아온 그녀의 도시 단상을 담았다. 그녀는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도시, 뉴욕에 일침을 가한다.
내가 미국에 갔던 것은 3년 전이다.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시작해서 동부의 뉴욕까지 한 달 가량을 여행했다. 베가스에서 새해를 맞고, LA에서 크루즈를 탈 계획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숙식을 모두 크루즈에서 해결할 것으로 예약하고, LA까지 갈 버스편까지 예약을 한 상태라 꽤 여유가 있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정 탑승 시간이 다가와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웅성이기 시작했고, 탑승 시간이 한참 지나자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폭주했다. 터미널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탈 버스의 기사가 법적으로 근무 시간이 되지 않아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티켓은 이미 돈을 다 받아 놓고 출발시간이 넘어서야 기사가 없다는 걸 공지하는 게 어느 나라 법인가. 미연방법이 그렇다. 내용인 즉슨 운전 기사는 마지막 운행 종료 시간을 기준으로 8시간이 지나야 다음 운행을 재개할 수 있는데, 연말연초의 교통 체증 때문에 기사가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해서 우리가 탈 버스를 운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원에게 사람들이 항의를 해봐도 이게 법이니 본인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법을 존중하는 태도는 훌륭하나 다른 대안이라도 미리 강구하거나 고객에게 공지를 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처럼 볼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었다.
LA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3일치 식비와 숙박비가 날아갈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다른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부랴부랴 남은 자리를 예약했고 열불이 나지만 예정대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버스에 올라서려고 하자 모바일 티켓을 확인하던 버스 기사가 우리를 막았다. 사실 예약을 한 친구가 당일 버스가 아니라 다음날 버스를 예약한 것이었다. 우리가 당황해하자 옆에 있던 아저씨가 기사한테 돈을 좀 주라고 했다. 우리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기사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버스를 탔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 중 하나는 버스 안쪽을 봤기 때문에 자리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우리는 기사에게 돈을 더 주고라도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기사는 자리가 없다며 그냥 휑하고 가버렸다. 그러자 팁을 알려준 아저씨는 우리가 차별을 당한 것 같다고 했다. 뒷돈은 되지만 외국인한테는 안 받겠다는 창의적 불합리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어찌됐든 LA에 가는 것이 돈을 아끼는 것이었기에 지금까지의 손실은 마음에 묻고, 눈물의 400불을 지불하고 Lyft를 탔다. (Lyft는 ‘타다’와 ‘Uber’와 비슷한 공유 교통 시스템이다.) 정말 좌충우돌 우당탕탕 여행기였다.
뉴욕에서의 일주일까지 마치고 JFK 공항으로 가기 위해 Uber를 탔다. 친한 친구들과 정말 많은 것을 함께한 여행이라 이렇게 마치려고 하니 시원섭섭했다. 차의 창문 밖으로 뉴욕의 마천루, 코트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뉴요커, 뭔가 뉴욕스러운 간판들이 지나갔다. 그런데 우리는 NYPD를 지나가지는 못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NYPD는 우리의 Uber를 갓길에 세웠다. 신호등을 끄고 직접 수신호로 교통 관리를 하고 있던 경찰의 지시에 따라 사거리를 지났을 뿐이었다. 기사가 말하길 이건 자기가 히스패닉이라 그렇다고 했다. 이번주에만 이렇게 잡혀서 벌금으로 낸 금액이 300 달러라고 한다. 경찰은 우리를 30분이 지나도록 갓길에 방치했다. 앞에 서 있는 차량의 주인들도 다 히스패닉이었다. 말로만 듣던 인종 차별이 정말 내 눈 앞에서 적나라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기사의 상황은 안타까웠지만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비행기 시간이 촉박했다. 시간이 지연되어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타겠다고 했는데 기사는 기다리라고 했다. 언제 이 일이 어떻게 처리될 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돈은 전액을 모두 받아내겠다는 미국의 일념. 다행히 우린 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뉴욕에서의 햄버거를 먹고 비행기를 탔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진실된 맛이랄까.
Fran Lebowitz는 뉴욕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모든 가판대와 상점에서 신문이 팔리고, 오후와 저녁이 되면 길바닥과 쓰레기통이 신문으로 넘쳐나던 과거의 뉴욕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이제는 가판대가 자전거 대여소로 바뀌었다. 그녀는 뉴욕의 성장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뉴욕에 여행 온 사람이라면 타임즈 스퀘어의 현란한 광고판을 보고 사진을 찍지만, 진짜 뉴요커 Fran은 사람 많은 그 길을 극도로 싫어한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아마 Snohetta가 관광객이 오랜 시간 편하게 앉고, 타임즈 스퀘어를 구경할 수 있도록 광장을 디자인한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뉴요커의 입장에서는 사람만 붐비고 지나가기만 힘들게 했다고 비판한다. 주간과 야간에 따로 뉴욕 시장을 둔다면 본인이 야간 뉴욕 시장을 맡아 도시에 변화를 꾀하겠다고도 말한다. 그녀는 빚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뉴욕의 부동산에 대해, 보행자는 신경도 안 쓰고 핸드폰을 보면서 자전거를 타는 뉴요커에 대해, 미술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의 가격에 박수를 치는 사람들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도시에 대해, 사람들에 대해 불평을 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행동을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말한다. 행동을 넘어서 물건이나 문화도 확장된 표현형에 속한다. 비버가 댐을 만드는 것도 이기적 유전자의 형질 발현인 것처럼 도시 또한 생존 기계 인간의 유전자의 표현형이다. 다시 말해 도시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 유전자풀의 경쟁, 협동, 선의, 배신, 혐오 등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다. 내게 익숙한 것은 남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도시는 상이한 유전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만큼 예측할 수 없다. 누군가는 영화관이 조용했으면 좋겠지만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을 아예 막을 수는 없다.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진화는 진화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좋아지려면 Fran처럼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평해야 하고,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때로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정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도시를 관찰해봐야 한다. 옆집의 이기적 유전자와 이야기해보고, 각자의 입장을 공고히 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그럴 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금보다는 좋아질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