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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Aug 30. 2021

말하지 못한 것

여든세번째 이야기


지금껏 입으로 꺼낸 말이 많을까, 꺼내지 못한 말이 많을까. 

이야기는 답하지 못할 질문에서 시작한다. 



말하지 못한 것, 하나

다 기억도 하지 못할 생각들이 머리 속을 휘젓고 지나간다. 생각나는 것들의 일부는 공기가 되고 성대와 입을 거쳐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온다. 머릿속을 헤엄치던 무형의 생각은 특정 진동수를 갖는 파동이 된다. 많은 생각이 작은 진동이라도 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어렴풋이 기억 너머로 사라진다. 사라진 것은 아쉽다. 그 형태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사라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련이 남는다. 그래서 좋은 생각은 종이 위에 적어 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작은 진동이 되길 바라면서. 



말하지 못한 것, 둘

어떤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 직전 사라진다.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에는 보통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왜 말은 다시 생각이 되기로 한 것일까.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화자는 의지를 갖는다. 말은 대개 대화를 위한 경우가 많다. 이해할 수 없는 말, 이해 받지 못할 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상처가 될 말. 말하면 지는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 않은 말. 두려움 속에 이런 말들은 그 가치를 잃는다. 



말하지 못한 것, 셋 

때로 말은 솔직함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사람들은 말의 경중을 가린다. 어떤 말은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져 꺼내기 힘들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의 무게는 온전히 화자에게 전달된다. 용기를 내 한 말은 입 밖에서 새로운 무게를 갖는다. 화자는 잠시나마 무게를 덜고, 말은 말 대로 의미를 품는다. 무겁게만 생각했던 말이 생각보다 가벼울 수도, 가볍게만 생각했던 말이 생각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 그 경중은 말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작은 진동이 되길 바라면서.


말하지 못한 것, 다시 하나

몸 따로, 마음 따로, 머리 따로. 그래서 말하지 못했나 보다. 셋이 같지 않을 수 있어서, 그게 부끄럽고 두려워서. 나오지 않아야 할 말은 끊임없이 나오고, 정작 나와야 할 말은 나오지 않는다. 조심스럽다. 점점 더 말하지 못한 것이 많아질 것 같아서. 연습하면 나아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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