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 모유수유!

무의식의 벽 안에 갖혀

by 달빛시

학창 시절 '조금' 살집이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는 수식어가 소멸된 건 고등학생 시절. '먹고 자고 공부만 하다가 돼지가 되더라도 ㅇㅇ대의 ㅇㅇ과만 가면 돼!'라는 무식한 생각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었거든요. 하지만 가고 싶던 학교에는 가지 못했고 그때 얻은 살들은 대학에 가서도 저와 동행하였습니다. (주르륵) 대학생 때 가장 좋아했던 TV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었어요. 그중 '출산드라' 캐릭터도 좋아했고요. 음.... 통통했던 제 마음을 대변해주었다고나 할까요. (이 세상의 날씬한 것들은 가랏!) 그런데 그 출산드라가 제 무의식에 심어준 무시무시한 싹이 있었습니다. 아기를 낳게 되거든 '자연분만,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2017년, 영아 10명 이상이 친엄마에게 살해되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원인은 산후우울증. 그 정도로 무서운 질병이 산모 10~20%에게 생긴다고 해요. 이걸 숫자로 환산하면 매년 4만 명가량이고요. 그것보다 약한 우울감을 느끼는 산모의 비율은 무려 85%. 그런데 산후우울증의 원인으로 대개 호르몬 변화를 언급하곤 하죠.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 같은. 한데, 호르몬 분비의 변화라는 건 거의 모든 산모들이 동일하게 겪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누구는 우울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면 그외의 요소에 대해 생각을 해보아야겠지요. 제 경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제왕절개 과정과 기대와는 달랐던 산후조리원이 우울증 유발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좀더 명확히 하면,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에서 내가 당연히 해내리라 여겼던 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감 때문이었지요.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말입니다.


산후우울증의 진짜 원인_ 좌절감 :: 사회적 분위기가 쌓은 무의식의 벽


출산 후 안부를 물어오는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말 동전을 넣었어요. '수술해서 아기 낳았어요'라고요. "그래?"라는 커다란 눈망울과 함께 "음.. 너는 꼭 자연분만할 것처럼 생겼는데.."라는 대답을 거슬러 받았고요. 땡그랑, 마음 속으로 떨어지는 반감. 자연분만 할 것처럼 생긴 건 어떤 건데요?, 라는 반문하려다가 저도 제 힘으로 낳고 싶어서 7시간 넘게 고생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요, 라면서 매듭 짓고 말았지요.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 자연분만은 좋고 제왕절개는 안 좋다, 라는 공식이 심어져있는 듯했어요.


꼴깍꼴깍. 아기 목구멍으로 젖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면 제 마음도 따라서 뿌듯해졌습니다. 하지만 양이 아기가 원하는 만큼 채워지지 못하니 분유를 같이 먹이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하루는 으슬으슬 추워졌습니다. 감기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서는 의외의 처방을 내려주더군요. 젖몸살이라고요. 온몸을 두드려 맞는 듯한 아픔과 가슴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유방외과와 마사지 샵등을 다니면서 모유수유를 이어갔습니다. 그건 조리원과 다수의 육아 서적에서 발견했던 어떤 문장 때문이었어요. '모유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라는.


조리원에서 다른 산모들과 밥을 먹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밥상 위 말반찬은 대부분 젖량, 아기 성별, 출산 방법, 향후 산후조리 방향 등에 대한 것. 출산 방법을 얘기하던 중 한 산모가 말했어요. "저는 제왕절개를 선택했어요."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 있다니! 자연분만만 생각하던 저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었지요. '자연분만! 모유수유!'가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타인이 쌓은 무의식의 벽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것이 쌓은 무의식. 하지만 그것을 모두 잘 하지 못한 저는 우울의 껍질에 싸인 채 아기조차 마음껏 예뻐해줄 수 없었습니다. 퇴근한 신랑에게 아기를 넘겨버리고 세상 모르고 잔 적도 여러 번, 양육을 도와주시겠다고 먼길 마다않고 와주신 시어머니께 심한 짜증을 낸 적도 있었어요. 휴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그랬던 제가 어떻게 우울증을 녹일 수 있었을까요? 시어머니가 해주신 밥? 신랑의 외조? 아기의 귀여움? 음. 그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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