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천국?

나는 한 마리 포유류였을 뿐

by 달빛시

삼 일이면 퇴원할 줄 알았던 병원. 하지만 오 일을 꽉 채워서 병실에 누워있게 되었어요. 제왕절개를 하면 자연분만보다 치유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수술을 하게 되자 책으로만 보았던 그리고 나도 그리 할 줄 알았던 감동의 순간들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신랑의 탯줄 자르기, 캥거루 케어하기, 낳자마자 젖물리기 같은 것 말이지요. 수술 부위가 아물어야 했기 때문에 앉아서 아기를 안을 수조차 없었어요. 출산 후 이틀 가량을 누워서만 지내다가 삼 일째가 되어서야 수유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요. 누워서 젖을 물릴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게 처음으로 아기에게 젖을 물린 날, 전화가 왔습니다. "산모님, 왜 아직도 안 오세요?"


산후우울증의 원인 2_ 젖 생산 학교 :: 산후조리원


산후조리원에서 온 전화였습니다. "아기가 예정일보다 늦게 태어난 데에다가 수술을 하느라 그랬어요." 그 말을 하는데 왜 눈물이 나던지요. 지금 같아서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알고 보니 출산 후에는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서 우울의 상태가 더 짙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우울감을 떨쳐주는 건 하루에 몇 번 가량 만날 수 있는 아기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맘카페의 엄마들이 '천국'이라고 칭송하던 조리원에 대한 기대감도 한 몫했지요. 얼마나 좋으면 천국이라고 불릴까?


출산 5일 차.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천국으로 추측되는 곳으로 향했어요. 잠시 동안 엄마 품에 안겨있던 아기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아기 침대로 떠나야만 했어요. 이어 생활 수칙을 전달 받았습니다. 하루에 밥은 세 번 먹으며 두 번은 신생아실 청소 시간이니 그때 식당과 신생아실로 오면 된다는 것. 모든 것은 방송으로 안내 되고, 틈틈이 수유콜이 갈 거라는 것. 산모 방에는 신랑과 아기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으며, 손님은 정해진 시간에 접견실에서만 만나야 한다는 것 등을요. 휘몰아치는 설명에 머리를 얻어맞은 후, 바리바리 싸든 짐을 안고 방에 들어갔어요. 이윽고 신랑이 자리를 뜨자 몰려오는 허탈감. 여기가 정말 천국일까?


그래도 아직 진짜 생활이 시작되진 않았잖아, 라는 생각으로 어두운 첫인상을 털어 버렸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갈아입은 펑퍼짐한 산후조리원복. 이런 옷은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싶을 때쯤 느껴지는 수술 부위의 저릿함. 어기적 어기적 침대 위에 눕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유하시겠어요?" 네, 조금 전에 설명들었던 수유콜이 온 것이었어요. 그날 이후 2주 가까이 듣게 된.


아기를 만나는 건 기쁜 일이었지만 젖을 준다는 건 그 반대였지요. 젖을 늦게 물려서 그랬던 걸까요? 병원에서부터 젖이 잘 돌지 않아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거든요. 젖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자 조리원 마사지 원장님은 '나만 믿어요'라고 큰소리를 치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또다른 악몽.


조리원에서의 생활은 셋 중 하나였어요. 밥, 수유, 마사지. 아기는 오로지 젖을 물릴 때와 하루 두 번 신생아실 청소를 할 때만 안아볼 수 있었지요. 물론 모자동실(아기와 한 방을 쓰며 생활하는 것)을 할 수 있긴 했어요. 하지만 처음 아기를 길러보는 저. 아기의 속싸개도 제대로 못 싸는 상황에서 아기와 함께 잠을 자고 (잠을 재우고), 홀로 아기를 본다(아기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조리원에 머문 동안 만난 20여 명의 산모 중 모자동실을 하는 분은 한 분도 없었고요. 모자동실은 무늬만 그러했지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리원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젖량을 늘리는 것이어요.


밥. 산모의 원기 회복과 젖량 늘리기에 좋다는 식단으로 짜여 있는 그것. 산모들은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을 때에도 결국엔 젖 이야기를 하곤 했지요. 식사 중에 들어온 원장님은 모든 이들 앞에서 'A 산모님은 좀 늘었어요? B 산모님은 유축 하니까 얼마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을 던졌고요. 귀를 닫고 있으면 되었겠지만,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수유. 신생아실 옆에 있는 수유실. 그곳에는 벽에 밀착된 의자가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수유쿠션과 유축기들, 수유의 각도를 맞춰줄 발판들이 놓여 있었고요. 그 의자에 앉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가슴을 다 내놓고 젖을 물리는 모습. 영화 '매드 맥스'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 처음에는 무척 놀라웠지요. 하지만 곧 저 또한 그 풍경의 일부가 되었어요. 아기를 먹여야 했으니까요. 정확히 말해 모유를 먹여야 했으니까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마사지. 1차적인 이유는 몸매 관리였지만 그것보다 더 큰 목적은 수유량 늘리기였지요. 하지만 날이 지나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 젖. 하루에 세 시간 간격으로 젖을 물리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 간격에 맞춰 유축을 하면 좋다는 말. 그래도 생각처럼 되지 않자 원장님은 중얼거리셨어요. "뚫어야겠네."


조리원을 나온 후에야 그런 방법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바늘로 유륜을 찔러서 젖을 나오게 하는 거요. 하지만 그 당시 삶의 목표는 젖, 젖, 젖! 조금 의심스럽긴 했지만, 결국엔 찔렸어요. 평소에는 보호하기에 바빴던 소중한 곳의 끄트머리를요. 저 말고 젖량이 적었던 다른 산모들도 그리했고요. 물론 너무나 아팠어요. 피도 났고요. 마사지를 받고 유축을 하자 희누런 모유 위에 붉은 방울이 똑똑 떨어졌지요. 이 살구 빛 모유를 아기에게 먹여도 되느냐는 질문에 '젖도 피로 만들어지는 거예요'라는 대답. 후우. 물론 그러하긴 하겠지만, 일부러 피를 보면서까지 젖을 물릴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고 나서야 아기.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아기는 목소리가 무척 큰 편입니다. 신생아실에 아기를 보러 가면 가장 크게 울고 있는 녀석이 우리 아기였지요. 그러다가도 엄마 품에 오면 울음이 잦아드는 아기를 보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삼켜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열흘 넘게 생활하노라니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더라고요. 결국 신랑에게 말했어요. "저 도저히 여기 못 있겠어요." 그렇게 며칠 일찍 퇴원, 아니 퇴교를 했어요. 젖 생산 학교를 말이에요. 하지만 퇴교 후에도 우울감은 졸업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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