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과정과 산후 우울증
얼마 전에 친한 친구를 만났어요. 저보다 일 년 정도 먼저 출산을 한 친구였는데 예전보다 더 예뻐졌더라고요. 비결이 뭐냐는 물음에 친구는 '아기랑 예쁘게 꾸미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더라고요. 순간 출산 후엔 삼 일에 한 번 머리 감는 걸 당연스레 여기고 있는 제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그런데 곧 그 비교가 사라진 건 사람은 다 다르다는 당연한 진리 때문이었어요. 출산 후 낮아진 자존감. 그걸 친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높이고 있었고, 저는 다른 측면으로 해소하고 있었거든요. 저의 자존감 향상 비법은 두 가지, 노래와 요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꼭 기록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리친 사건, 산후우울증이 그것입니다.
출산 후 많은 엄마들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산후우울증. 저 역시 그것의 침입을 받았어요. 그것이 마구잡이로 침투했던 큰 원인은 두 가지, 분만과 모유수유의 과정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인 분만은 이러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당연히 자연분만을 하리라 여겼던 저. 맘카페에 즐비한 출산 후기도 읽어보지 않았지요. 어차피 나는 내 힘으로 아기를 낳고, 신랑은 감격에 겨워서 탯줄을 자르게 될 테니까요. 그런데 출산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나도 전혀 오지 않는 진통. 시간이 더 지체되면 아기가 더 커져서 위험하다는 주치의샘의 의견대로 촉진제를 맞고 출산을 해보기로 했지요. 물론 그 전에 의사샘은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수술하실 건가요?" 저는 당연히 아니라고 거절했고 신랑과 분만실에 들어갔어요.
관장, 제모, 내진. 이른 바 '출산 3종 굴욕 세트'라고 불리는 것이죠. 옷을 갈아 입고 그중 두 가지인 관장과 제모를 했습니다. 하지만 듣던 것처럼 그다지 굴욕적이지는 않았어요. 필요하니까 하는 거겠지, 싶었으니까요. 촉진제를 맞자 잔물결처럼 밀려오는 아픔. 그 모습을 보던 신랑은 얼른 무한도전 동영상을 틀어주었어요. 아프니까 좀 웃으라는 의미에서 말이지요. 가장 좋아하는 모내기 특집을 보면서 웃다 울다를 반복하니 어느덧 진통 5시간이 지나 있었어요. 문제는 아기가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 내진을 한 의사샘은 "이대로라면 수술을 해야겠는데요?"라는 말을 던지고 떠났어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아니 않은, 수술이요. 결국 몇 시간이 지나도 엄마 자궁을 떠날 생각이 없는 아기 덕에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건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자연분만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제왕절개 과정. 우선 제모의 위치가 다르더군요. 다시 제모를 해야 했습니다. 수술 후 소변 배출을 위해 요도관도 삽입을 해야 하고요. 그때부터 진짜 굴욕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수술을 했더라면 마취를 했을 텐데, 자연분만 시도 중에 진행되는 수술이라 아무런 조치 없이 요도관이 삽입되었어요. 그건 바퀴벌레를 삼십 마리쯤 입에 우겨넣는 기분. 수술실에는 당연히 침대에 실려서 (최소한 휠체어라도 올라서) 갈 줄 알았는데, 그 상태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수술실로 가야만 했고요. 그래도 수술인데 말이지요. 입에 채 들어가지 못한 벌레들이 저를 따라오는 듯했습니다. 배는 그야 말로 남산만 했고, 진통 역시 계속 되고 있었어요.
아늑한 분위기의 가족분만실과는 달리 수술실에는 왜 그리 사람들이 많던지요. 어림짐작해서 7명은 되어 보이는 의료진들이 눈이 시린 빛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실험실에 갓 들어온 한 마리 동물을 기다리면서요. 그 앞에서 수술 가운을 벗고 수술대 위에 올랐어요. 하아.. 금속이 내뿜는 은빛이 그토록 몸서리쳐지게 차가운 줄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옆으로 누우세요'라는 말에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모로 누웠고, 척추 부근에 주사를 넣자 하반신이 사라졌습니다. 나의 것인데 나의 것이 아닌 살가죽이 슥슥 잘렸고, 곧이어 터져나오는 "으앙" 소리. 아, 아기가 태어났어요. 아니, 꺼내졌어요.
한 생명이 제 얼굴 왼쪽으로 왔어요. 티끌보다 작은 크기로 와서 이제는 3kg가 넘는 아기가요. 그 순간의 감정은 출산의 감동보다는 미안함과 고마움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기를 만난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힘들게 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 그렇게 "아기야 안녕, 반가워, 미안해, 고마워."를 외치는 저에게 간호사 한 명이 말했어요. "이제 재워드릴게요."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마취 상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을 뜨자 신랑은 피가 멎지 않아서 꽤 고생을 했다고 했어요. 아기는 잘 있고요. 그런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오 일 간 병원 생활을 하고 나니 또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후조리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