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동화 5 :: 닭고기 미음
밤이 밤이 아니고 낮이 낮이 아닌 곳. 별이 별이 아니고 해가 해가 아닌 곳에 사는 계 여사는 문득 이상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똥을 만져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에요. 창살에 덕지덕지 묻어 있는 희고 검은 똥 말고, 하루에 한 번씩 누는 살굿빛 똥 말입니다. 발밑에 찍 싸버리는 액체 말고, 눌 때마다 똥꼬가 찢어질 것 같은 둥근 덩어리 말입니다. 하지만 계 여사는 결코 그 똥을 만질 수 없었습니다. 몸 밖으로 내어놓자마자 도르르 굴러떨어져 아래로 가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그 똥들은 손가락들에 의해 치워졌습니다.
계 여사는 자신의 충동을 오른쪽에 있는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열심히 모이를 쪼던 친구는 "드디어 실성을 했구나. 네가 싼 똥을 만지고 싶다니."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미 친구의 상아색 부리는 부서질 만큼 부서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쇠로 된 먹이통을 계속 쪼아댔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기 전부터 잘려있긴 했지만요. 부리 같지 않은 부리를 가진 친구는 여사를 계속 비웃었습니다. "언젠가는 여기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고 싶다고 하고, 언젠가는 아래로 내려가 달리기를 하고 싶다고 하더니. 나가 봐라. 때 되면 밥 주고 때 되면 재워주는 곳이 얼마나 있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계 여사. 오른쪽 친구의 말처럼 계 여사는 하늘과 땅에 대한 욕망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입 밖에 낼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여사의 꿈을 철사 끝에 쪼인 지렁이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왼쪽 친구에게도 말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솨아실 나도 그으런 적이 있어. 그래서 하.. 하안번은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쩌어기 구우석에다가 누어보기도 했었지. 엉덩이를 이러엏케에 더 뒤이로 빼고 말이야. 그으런데엣.." 말을 하던 친구가 희게 뒤집힌 눈을 한 채 여사의 대가리를 향해 부리를 치켜세웠습니다. 이미 계 여사의 목덜미에는 붉은 살점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매번 당하기만 하는 계 여사, 이번에는 한번 대거리를 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습니다. 벌써 다른 닭들과의 다툼이 시작되었으니까요. 푸드덕, 날개 한번 제대로 펼 수 없는 이곳에서 서로 쪼고 쪼이는 모습은 흔한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쉴 새 없이 쪼아대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 늘어져 버렸고, 손가락이 와서 주검들을 데려갔습니다.
옆 친구의 빈 자리를 보는 계 여사의 마음에 검은 진드기가 들러붙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기에 우울감을 떼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잠시나마 넓어졌다는 것도 위안거리가 되었습니다. 계 여사는 이제는 유언이 된 친구의 말처럼 엉덩이를 뒤로 빼보았습니다. 하지만 여사의 엉덩이를 기다리는 건 차가운 철망이었어요. 여사의 대가리 양옆, 머리 위, 발아래에 있는 그런 철망 말입니다. 망 위에서 발톱을 세우고 서 있는 사이, 여사의 발가락은 제멋대로 휘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몸 하나를 간신히 비벼 넣을 수 있는 철망으로 된 방. 계 여사에게 그곳은 '절망의 방'이라고 불렸습니다.
여사의 똥에 대한 욕망은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에도 이어졌습니다. 오히려 만지고 싶은 것을 넘어 품어 안고 싶어지기까지 했어요. 하지만 그 마음을 더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미친 닭 소리만 듣게 될 테니까요. 서로를 쪼아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곳에서 미치지 않은 닭은 없지만 말입니다. 문득 그 사실을 깨달은 계 여사는 스스로를 '광계'라고 부르리라 다짐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미친 세상을 견딜 수 없으니까요.
광계 여사는 우렁차게 선언했습니다. "저는 언젠가 하늘도 날고 땅에서 뛰어도 보고, 언젠가는 저 둥근 똥들도 품어볼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저를 미친 닭, 광계라고 불러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래 봐야 그 소리가 가 닿은 곳은 여사가 살고 있는 케이지의 위, 아래, 옆이 전부였습니다만. 하지만 계 여사의 선언 후에도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똥은 아래로 도르르 굴러내려갔고, 손가락들은 둥근 똥을 가져갔지요. 그 광경을 보던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근데 손가락들은 왜 저 똥만 치우는 거지? 다른 똥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광계 여사는 똥이 똥이 아닐 수도 있음을 눈치챘습니다. 광계 여사의 둥근 똥이 그것을 거두어 가는 손가락에서 헛돌며 떨어진 것도 그때였습니다. '탁!' 깨어진 알 껍질에서 노란 액체가 흥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광계 여사의 마음도 같이 깨어졌습니다. '아, 아기야.... 내가 품고 싶었던 건 똥이 아니라 너였구나.'
자식을 눈앞에서 잃은 후, 광계 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알 역시 낳을 수 없었지요. 그러자 주변의 닭들이 여사의 별칭에 혹을 붙였습니다. '완벽한 광계'라고 말입니다. 광계 여사는 결국 닭장 속에 온 지 6개월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건 알을 낳는 닭들의 평균 수명의 절반의 절반 정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기실 닭은 7년 정도는 거뜬히 산다지만요. 손가락이 들어와서 광계 여사를 데려갔고 그 자리는 곧 다른 닭들로 채워졌습니다.
광계 여사의 시신은 폐사한 다른 닭들과 함께 여러 곳으로 실려갔습니다. 여사의 비루한 몸을 덮고 있던 털들은 모조리 뽑혔고, 온전한 몸은 날개, 다리, 가슴 등 부위별로 잘린 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른 닭들의 그것과 섞인 채로 말이죠. 하지만 사라지지 못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마음은 날개에, 걷고자 했던 꿈은 다리에, 알 그러니까 아기를 안아 보고자 했던 소망은 가슴에 여전히 남아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아기에겐 지방이 없는 부위가 좋겠지?"
광계 여사의 가슴 부위도 들어있는 닭가슴살 팩을 한 남성이 집어들었습니다. 남성의 다른 쪽 손에는 '아기 이유식 만들기'라는 글씨가 있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습니다. 남성의 집 주방에서 광계 여사의 가슴은 잘게 쪼개져 팔팔 끓는 물에 들어갔습니다. 믹서에 넣어져 윙윙 갈리기도 했고, 철망보다 훨씬 더 촘촘한 체에 걸러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광계 여사는 별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닭고기 미음이 되어 자신의 알 대신 사람의 아기라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절망의 방’에서의 생활이 더 끔찍했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