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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Nov 30. 2018

소원

음식 동화 4 :: 소고기 미음

그 농장에는 사라진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한때는 동요에도 함께 출연할 정도로 농장 입주자들에게 친숙했던 단어였어요. 하지만 그것이 불러오는 어떤 감정 때문에 언젠가부터 잊혀졌습니다. 이제 입주자들은 그것 대신 '무우'나 '음므으' 등을 사용하고 있지요. 사라진 단어는 '엄마'입니다.


어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처음부터 '엄마'라는 단어가 없었던 건 물론 아닙니다. 그건 농장의 주인, 그러니까 입주자들에게 살곳과 먹이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정책이 달라지면서부터입니다. 아기 소가 좀더 빨리 자라려면 엄마와 분리를 해야 한다나요. 어쩌면 엄마 소가 더 많은 아기를 낳게 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소가 많아질수록 A 농장 주인의 지갑도 두툼해지니까요. 결국 송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 젖 대신 기계 꼭지를 빨게 되었습니다. 딱딱한 꼭지를 빨면서도 송아지들은 엄마를 잊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있는 곳을 향해 돌진도 여러 번 했다지요. 그로 인해 축사를 갈라놓는 장애물이 두 번 부서지고 난 후, 엄마 소들과 아기 소들은 완전히 다른 축사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물러가고 있는 봄이었습니다. 농장 주인이 놓고 간 사료를 느릿느릿 되새김질 하고 있던 어린 소1의 코를 싱그러운 향기가 톡톡 쳤습니다. 어린 소1은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겹겹이 노란 향을 뿜어내고 있는 민들레였습니다. 노란 얼굴 아래에 있는 초록색 잎사귀 덕분에 어린 소1은 그것이 풀인 줄 알았습니다. 식물이라고 해야 식사로 나오는 마른 풀 정도밖에 보지 못했던 어린 소1은 꽃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습니다.


"너는 정말 멋진 향을 품고 있구나."


민들레는 배시시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래? 고마워. 아무래도 우리 엄마를 닮았나봐."


대답으로 돌려받은 문장 중에 모르는 단어가 있었지만, 어린 소1도 민들레처럼 씨익 웃었습니다. 피어나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민들레는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들뜬 기분을 처음 만난 친구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너도 너희 엄마를 닮았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색 털 말이야."


민들레의 말을 들은 어린 소1은 당황했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한 번 들었을 때에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두 번이나 들었을 때에는 그것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걸 모른 채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고요. 게다가 그 단어를 들었을 땐 살짝 '찌릿'한 느낌까지 들었거든요. 어린 소1은 약간 용기를 내었습니다.


"미안한데.... '엄마'가 뭐니?"


민들레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칭찬을 듣고 기뻐할 줄 알았던 친구의 낯빛이 어두워진 데에다가, 그가 '엄마'라는 걸 모르다니요. 하지만 민들레 자신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고민하던 꽃은 걱정을 어물쩍 넘겨 버렸습니다.


"음... 그건... 네 친구들한테 물어봐."


겹겹이 들고 있던 고개를 숙여버린 민들레. 그에게 어린 소1은 더는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어린 소1은 옆에 있는 다른 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두 먹은 것들을 되새김질하기에 바빠 보였습니다. 누구에게 말을 걸까 하다가 한번 소리쳐보기로 했습니다. 아는 이가 있으면 얘기를 해주겠지 싶어서요.


"엄. 마 ."


축사 안의 소들이 모두 고개를 들어 어린 소1을 바라보았습니다. 커다란 눈들에는 슬픔이 주렁주렁 맺혀 있었습니다. 순간 소는 깨달았습니다. 이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거란 걸요. 머쓱해진 그는 시선을 좌우로 돌리며 더 크게 외쳤습니다. "음무. 무우. 무우우."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엄마'라는 단어를 딱 한 번 말했지만, 마음 어딘가에 노란 난롯불이 켜진 것 같았거든요. 그날 밤 어린 소1은 뜬 눈으로 밤을 보냈습니다. 3월이었지만 어둠은 아직 겨울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밤 하늘에서 영글어가는 달은 봄꽃을 틔운 엄마 같았습니다.


'차르르르'

어린 소1은 농장 주인이 사료를 뿌리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다른 소들은 와작와작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도 얼른 사료 통에 고개를 처박았겠지만 어린 소1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물끄러미 축사 밖을 내어다보는 그에게 노란 민들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실 민들레도 아까부터 소에게 신호를 보내던 차였습니다. 지난 밤 민들레도 잠에 좀처럼 들지 못했거든요.  


"미. 안. 해."

"고. 마. 워."


누구의 말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로 적다 보니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 되는군요. 어린 소1의 말에 민들레는 놀랐습니다. 친구의 말에 무책임하게 등을 돌린 자신이 고맙다니요. 민들레는 이유를 묻는 대신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걸 말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달님에게 소원을 빌면 이뤄주신대. 나도 그 덕분에 흰 꽃씨로만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뿌리를 내리고 꽃도 피우게 된 거거든. 혹시 모르는 게 있거든 그걸 아는 게 소원이라고 달님에게 말해봐."


민들레의 말을 들은 소는 씨익 웃었습니다. 그러고 다시 말했습니다. 고.마.워. 어린 소1은 그날 밤 달님을 꼭 올려다 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를 원하는 만큼 많이 많이 부르게 해달라고 빌리라 다짐했어요. 그때였습니다.


"씨가 좋은 녀석들이니까 많이 쳐줘야 하네."

"암요. 요즘 송아지 고기 인기가 무척 좋거든요."


벌컥 열린 축사의 문 안으로 남자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어린 소1과 친구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을 따라나섰습니다.


*


어린 소1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그도 몰랐습니다. 이미 어둡고 캄캄한 곳을 십수 번이나 지나왔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은 조금 달랐습니다. 좀더 밝고 아늑했거든요. 이윽고 그는 미끄덩한 곳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어머!! 다시 해봐!! 여보, 있잖아요 우리 아기가!"


어린 소1의 앞에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닌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있었습니다.


"여보! 근무 중인데 미안해요. 근데 지금 우리 아기가 '엄마'라고 하고 있어요. 응응. 옹알이 아니고 진짜로 말을 했어. 너무 감격스러워서 전화 걸었어요."


아기의 입을 빌린 어린 소1이 힘껏 외치고 있었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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