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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Nov 26. 2018

우려내는, 우려먹는  

음식 에세이 4 :: 소고기 미음

베란다에 주먹 크기의 주황빛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약 보름 전 고향에서 받아온 대봉감들입니다. 가져가서 숙성 후에 먹으라는 친정 엄마의 말씀. 감을 왜 숙성하느냐고 여쭈니 대봉은 본디 그리 먹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삼십 년 넘게 대봉은 원래 말랑말랑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두 달 전 엄마는 김치를 내어주셨습니다. 김장철은 아직 아니지만 미리 담그셨다면서요. 김치통과 함께 그것의 반 정도 크기가 되는 통도 내려놓으셨습니다. P서방과 함께 먹으라고요. 별 생각 없이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통들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큰 김치통과 함께 받은 게 어쩐지 너무 묵직합니다. 아, 열어 보니 추석 때 선물로 드린 LA 갈비가 들어 있습니다. 휴직 중이라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요즘. "복직하면 소갈비로 드릴게요"라면서 머쓱하게 내민 저렴한 돼지갈비였는데. 이렇게 양념 옷까지 맛있게 차려 입은 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부메랑을 맞은 이는 부모님께는 돼지갈비를 드렸으면서 자식에게는 소고기 그것도 한우만 고집해서 먹이는 딸입니다. 참, 못났습니다.  


아기가 야채 미음에 익숙해질 즈음, 모유량은 점점 부족해져 갔습니다. 모유를 먹는 아기와는 달리 분유를 주로 먹는 아기는 철분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기에게 더욱 중요한 건 고기 섭취. 그중 가장 좋은 건 소고기라고 하기에 마트 고기 코너에 들러 1AA등급 한우 안심을 집어왔습니다.



소고기 미음

    재료 : 불린 쌀 15g 소고기 10g 물 150g 

    도구 : 믹서, 체, 이유식 냄비

    과정 

        0. 소고기는 찬물에 담가 핏물 빼기, 쌀은 미리 불려놓기 (둘다 30분 이상)

        1. 불린 쌀을 믹서에 갈기 (물 20g과 함께) 

        2. 물 100g과 함께 소고기 익히기 (위에 뜨는 불순물 걸러내고, 육수 버리지 않기)

        3. 2를 1에 함께 넣어 가기 (믹서에 남은 것들은 물 10g과 함께 씻어서 담기)

        4. 3과 2의 육수를 센불에서 끓이기 (끓으면 약불로 줄여 남은 물로 농도 맞추기. 거의 안맞춰도 됨)

        5. 4를 체에 거르기 



소고기 미음의 핵심은 육수인 듯합니다. 이후에 만들게 된 소고기가 들어가는 이유식들도 그러했고요. 육수를 낼 때에는 살과 함께 뼈도 넣어서 우려내는 게 더 좋을 텐데. 아직 살덩어리만으로 육수를 내고 있습니다....라고 육수 내는 글을 쓰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야말로 부모님의 뼈까지 우려먹는 자식이로구나.


지금도 대봉들은 저희 집 베란다에서 달빛 바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옛날 옛적 어느 효자는 한겨울에 홍시를 구해서 부모님께 효도를 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 귀한 것을, 고기를, 그리고 당신들이 가지신 무언가들을 자꾸자꾸 받아 먹고만 있네요. 돌아오는 명절에는 고기나 돈 같은 것 말고, 당신들 오로지 당신들만을 위한 걸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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