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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시 Jan 21. 2019

좁아서 좋은 점

음식 에세이 12 :: 소고기 미역죽

미국인 노인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연세는 예순 즈음. 만찬의 주관자는 사람은 그분을 위해 값비싼 한정식 코스 요리를 준비하였는데요. 전복, 갈비, 장어, 새우, 굴비, 대하 등이 상 위에 올라왔지요. 한데, 우리 눈에는 산해진미인 그것이 노인에게는 대부분 먹지 못할 것이었어요. 아, 그는 바다에서 나는 건 아무 것도 못 드시는 분이었습니다. 결국 그분은 간간이 나오는 육고기와 밀가루, 그리고 마지막에 제공되는 쌀밥 정도로 배를 채우셨는데요. 심지어 멸치가 우려졌기 때문에 된장찌개도 드시지 못하셨어요.


사실 주관자는 노인이 해산물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맛있게 조리된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이유인 즉, 노인의 아들 역시 해산물을 못 먹었는데 한국 생활을 하면서 그걸 극복했기 때문이더랍니다. 처음에는 해산물을 입에 대지도 않던 그. 하지만 '김'을 맛본 그가 이제는 회 한 접시는 너끈이 해치울 정도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아들, 사실은 해산물을 먹을 기회가 없었던 거죠.


미국인 아들 스스로가 해산물을 못 먹는다고 생각했던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해산물 요리를 안 해주셔서, 그리고 내륙에서 자란 그에게는 해산물이 귀해서. 실제로 해산물의 냉동 및 냉장 유통이 가능해진 건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해산물을 먹지 못한 게 아니라 먹는 법을 몰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육십 가까이 들여온 노인의 습관은 바다 너머에서도 바뀌지 않았어요.


반면 원하면 언제든지 다양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우리 나라. 그곳에 사는 아기도 10개월이 됐을 즈음 처음으로 해산물을 만났습니다. 바다의 풀, 미역을요.



소고기 미역죽

    재료(3끼 분량) : 불린 쌀 20g, 쇠고기 25g, 미역 5g, 물 200g

    도구 : 믹서, 체, 이유식 냄비

    과정 

        0. 쌀은 미리 불려놓기 (30분 이상), 쇠고기는 미리 핏물 빼두기, 미역도 불려두기

        1. 불린 쌀을 믹서에 갈기 (물 20g과 함께) 

        2. 물 100g과 함께 쇠고기 익히기 (육수 버리지 않기) 

        3. 믹서에 쇠고기, 미역 갈기  

        4. 육수 100g에 불린 쌀 + 간 쇠고기 + 간 미역을 끓이기

        5. 천천히 저어가며 끓이며 남은 물로 적당한 농도 맞추기 

       


잘게 잘린 미역 조각은 미끌거리며 아기에게 푸른 바다의 맛을 알려주었습니다. 비록 파도의 포말 만한 것이긴 하지만요. 그렇게 처음 바다를 만난 아기는 장차 다양한 해산물들을 알게 됩니다. 자동차를 타고 조금만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바다에서 온 것들 말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젯밤에 주문한 고구마 한 상자가 곧 도착할 거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땅끝 마을에서 오는 고구마들. 추위 속에 얼지 않고 도착했으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다니. 인터넷 주문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배송 시스템이 참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은 무조건 당일 배송, 주문한 물건을 로켓처럼 빨리 보내주는 걸로 유명한 상점도 있잖아요. 땅끝에서 땅끝으로 가는 데에 하루도 걸리지 않는 나라. 좁아서 불편한 점도 있지만 좁아서 좋은 점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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