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에세이 11 :: 바나나 매시
며칠 전 저희 아기는 더 어린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주었어요. 더 큰 언니들 틈에서 뛰어 놀기도 했고요. 엄마랑 외가에 다녀왔거든요. 연말 연시였기 때문일까요? 저처럼 제 친구들 역시 친정에 많이 와있던 덕분에 오랜만에 이십 년지기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네 명이 모였을 텐데 이번에 모인 인원은 무려 10명! 저와 다른 친구는 아기가 한 명, 다른 두 친구는 각각 아기가 두 명이었거든요. 덕분에 카페 모퉁이의 조그만 방 한 칸은 냄비 뚜껑처럼 들썩거렸답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자 외할머니, 그러니까 저희 엄마는 아기에게 밥을 내어주셨어요. 밥 옆에는 크고 작은 숟가락이 있었고요. 작은 숟가락은 밥먹기 용도, 큰 숟가락은 물 마시기 용도였지요. 그러나 할머니가 내어주신 큰 숟가락을 아기는 잘 물지 못했어요. 한데 집에 돌아올 즈음에는 그걸로 밥도 먹고 있더라고요. 외가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기의 성장에는 제법 긴 것이었나봐요. 밥 숟가락도 커졌을뿐만 아니라 이전까지는 늘 잘게 썰어 먹기만 했던 바나나도 이제는 껍질채로 한 손에 들고 먹게 되었거든요. 더 이전에는 으깨주어야 간신히 받아 넘겼던 바나나였는데 말이에요!
재료 : 바나나, 우유(분유 또는 모유) 10g
도구 : 숟가락
과정
1.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포크로 으깨기
2. 우유(분유 또는 모유)로 적당량의 수분감 만들기
바나나 한 개를 통째로 들고 먹는 아기를 바라 보며 저는 다시금 20년지기들과의 연말모임을 떠올렸어요. 모임을 하면서 잠깐 떠올랐던 생각 중 하나가 '언제 저렇게 키우나'였거든요. 그런데 며칠만에 숟가락도 커지고 쑥쑥 자라는 아기를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기우'임을 깨달았어요. 삶은 눈 깜짝할 새.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기다릴 이유도, 지나간 과거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어요, 라고 아기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