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시 Jan 14. 2019

커지는 숟가락

음식 에세이 11 :: 바나나 매시

며칠 전 저희 아기는 더 어린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주었어요. 더 큰 언니들 틈에서 뛰어 놀기도 했고요. 엄마랑 외가에 다녀왔거든요. 연말 연시였기 때문일까요? 저처럼 제 친구들 역시 친정에 많이 와있던 덕분에 오랜만에 이십 년지기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네 명이 모였을 텐데 이번에 모인 인원은 무려 10명! 저와 다른 친구는 아기가 한 명, 다른 두 친구는 각각 아기가 두 명이었거든요. 덕분에 카페 모퉁이의 조그만 방 한 칸은 냄비 뚜껑처럼 들썩거렸답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자 외할머니, 그러니까 저희 엄마는 아기에게 밥을 내어주셨어요. 밥 옆에는 크고 작은 숟가락이 있었고요. 작은 숟가락은 밥먹기 용도, 큰 숟가락은 물 마시기 용도였지요. 그러나 할머니가 내어주신 큰 숟가락을 아기는 잘 물지 못했어요. 한데 집에 돌아올 즈음에는 그걸로 밥도 먹고 있더라고요. 외가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기의 성장에는 제법 긴 것이었나봐요. 밥 숟가락도 커졌을뿐만 아니라 이전까지는 늘 잘게 썰어 먹기만 했던 바나나도 이제는 껍질채로 한 손에 들고 먹게 되었거든요. 더 이전에는 으깨주어야 간신히 받아 넘겼던 바나나였는데 말이에요!   



바나나 매시

    재료 : 바나나, 우유(분유 또는 모유) 10g

    도구 : 숟가락

    과정 


        1. 바나나 껍질을 벗기고 포크로 으깨기

        2. 우유(분유 또는 모유)로 적당량의 수분감 만들기

       


바나나 한 개를 통째로 들고 먹는 아기를 바라 보며 저는 다시금 20년지기들과의 연말모임을 떠올렸어요. 모임을 하면서 잠깐 떠올랐던 생각 중 하나가 '언제 저렇게 키우나'였거든요. 그런데 며칠만에 숟가락도 커지고 쑥쑥 자라는 아기를 보면서 그것이야말로 '기우'임을 깨달았어요. 삶은 눈 깜짝할 새. 그러니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기다릴 이유도, 지나간 과거에 너무 연연할 필요도 없어요, 라고 아기가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거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