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팀의 작가 소개, 그리고 곧 출간될 <같은 하늘 아래서> 소개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과 함께 책 출간일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청소년들의 작가 데뷔 일지 3번째 이야기에서 3명의 작가님을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지난 번에 이어서 이번 6번째 이야기에서는 나머지 4명의 작가님들을 소개해드리고 작가님들이 직접 작성한 글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이에 더해 앞으로 출간될 책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제목 : 타임머신
만약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타임머신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이 질문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내 마음속에는 항상 나를 인도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는 나에게 말했다.
"샤오안 친구한테 가보렴."
오랫동안 샤오안을 만나지 못해서, 그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나는 여전히 그 날들이 나만의 특별한 기억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2013년 8월의 어느 날, 오전 휴식 시간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뛰어가던 중, 갑자기 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내 발 밟았어!"
뒤돌아보니, 귀엽게 생긴 한 소녀가 있었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미,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며칠 후 저녁, 밥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때 그녀는 엄마와 함께 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바로 이 사람이 내 발을 밟았어요, 지금도 아파요."
나는 속으로 '뭐야, 나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그리고 이미 사과까지 했잖아. 이것까지 부모님한테 이른다고? 진짜 대단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엄마가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너 학교에서 우리 딸을 괴롭히지 마, 알겠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찾아갈 거야."
"엇,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급히 대답했다. 그녀가 바로 이야기 속의 여주인공, 샤오안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학교의 장거리 달리기 팀에 참가했고 샤오안은 육상팀에 참가했다. 그 해 우리는 거의 대화하지 않았고, 가끔 나누는 대화도 팀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중학교 2학년 운동회 때에 일어났다. 그 해 운동회에서 나는 우연히 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다. 그로 인해 명성이 자자해졌고, 반의 중심이 되었으며,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았다.
심지어 우리 교감 선생님(체육부장 겸임)은 한 번은 국기 게양식에서 공개적으로 나를 칭찬하며 말했다. "5반의 그 XXX 학생은 평소 훈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를 만나도 항상 미소를 띠며, 마음가짐이 아주 좋습니다. 모두 그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의 대화도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주로 훈련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가끔은 사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수다를 떨었다. 우리는 점점 더 친해졌고, 나와 샤오안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불행히도, 그 운동회에서 한 번의 승리로 인해 나는 교만해졌다. 매일 가장 기대되는 것은 방과 후 훈련이었고 공부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결과 중2 기말고사 점수가 매우 낮았다. 학교에서는 1년을 유급하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나는 한 학년 내려갔다. 운 좋게도, 나는 샤오안의 반을 배정받았다. 하늘이 나를 도운 것 같았고 마음속으로 엄청나게 기뻐했다.
개학할 때, 나는 샤오안과 같은 책상을 쓰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무심코 그녀에게 물었다. "샤오안, 자리 고를 때 어디에 앉고 싶어?" 샤오안은 대답했다.
"나는 3번째 줄에 앉고 싶어."
나는 말했다. "정말? 우리 둘이 같은 생각이야. 나도 3번째 줄에 앉고 싶었는데."
그래서 나는 샤오안과 하나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옆자리로 자리를 선택했다. 이렇게 하면 3주마다 자리가 바뀔 때마다, 결국 샤오안과 함께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함께 앉았던 첫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그녀는 자리에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그 진지한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었고,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내 마음은 그녀의 손끝에서 움직이는 펜 끝에 맞춰 목구멍까지 올라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샤오안. 함께 같은 책상에 앉게 되어 정말 기뻐."
"안녕, 학교 우등생! 이제 매일 너한테 문제를 질문할 수 있겠다." 샤오안은 기쁘게 말했다.
(나는 유급하면서 예전에 배운 교재를 다시 공부했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월말 시험에서는 거의 매번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나는 비록 입으로는 "아니야, 아니야. 나는 우등생 아니야"라고 말했지만, 내심은 너무 기뻐서 'Yes! Yes! Yes!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라고 생각했다.
함께 앉은 이후로 많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샤오안은 가끔 내 팔에 실수로 닿을 때가 있었고, 그런 우연한 신체 접촉도 내 마음을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가끔 나에게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여기, 곰 박사 젤리, 나 이거 정말 좋아해."
"응, 정말 맛있네." 나는 젤리를 먹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 일을 기억했고, 그 이후로 자주 젤리를 사 왔다. 가게에 있는 다양한 맛의 젤리를 다 먹어봤다. 그 후, 그것은 매 쉬는 시간마다 우리의 가장 즐거운 즐길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근육질 남자 그림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때 나는 아직 많이 말랐었고, 그 티셔츠를 입으니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샤오안은 내 옷차림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너 그 옷 입으니까 너무 'man'이야. ㅋㅋㅋㅋㅋ. 이제부터 너를 '맨 오빠'라고 부를게."
"어? 맨 오빠?" 나는 그 이름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그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들어, 그 후로 내 모든 계정 닉네임과 가능한 모든 이름을 '맨'이라 했다. 이후 중3이 되자, 몸이 자라면서 점점 살이 붙고 체형도 건강해졌다. 그 옷을 다시 입었을 때,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맨'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계속 쓰고 있다. 그 이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요한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옳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졸업 후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결국 그 날 점심에 샤오안에게 고백했다.
컴퓨터를 켜고 그녀와의 채팅창을 열었다.
'샤오안, 나는 너를 좋아해. 나는 너와 같은 고등학교에 가고, 같은 대학에 가고 싶어. 그리고 너와 함께 있고 싶어.' (후략)
샤오안과 이 학생의 결말은 향후 출간될 북소리팀의 책에서 확인해주세요!
제목 : 이별 후에는 끝없는 그리움이
그날, 가방을 싸 메고 등교하려던 순간, 엄마가 내게 말했다. 동생과 함께 한국에 가기로 했다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아 가만히 서서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 같지만, 결국 여느 때처럼 난 등굣길에 올랐다. 사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도 분명 단단히 해 놓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엄마가 아빠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아빠의 거센 반대로 큰 싸움이 나 집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됐었다. 그날 아빠가 그토록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결국 이 일을 아빠 몰래 진행하기로 결심하셨다. 그리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내게만 이를 귀띔해 주셨던 거다. 그래서 오늘 엄마에게 이 얘기를 들었을 때도, 심하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동차를 타고 집에서 멀어질수록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찬바람과 눈물이 한 데 섞여 얼굴을 흠뻑 적실만큼 감정이 주체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학교에 도착했고, 눈물을 닦아낸 후 학교로 발을 내딛었다. 그날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엄마가 혹시 나를 보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만 했지만, 기다리던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평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쳐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평소엔 그 길목에 서 있던 그림자가 오늘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집에 와보니 이모들이 모여 있었는데, 보아하니 엄마가 떠났다는 소식을 모두 알고 오신 것 같았다. 날 보는 눈에서 모종의 연민과 의문이 섞인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갔다. "괜찮아, 나중에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와." 이모들이 해주는 말을 들으며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얼마 안 지나 그들이 모두 떠난 집에 아빠와 나 둘만이 남았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떠나기 전 하고 가신 물만두를, 그리고 아빠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순간 주체 안되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젠 정말 엄마가 내 곁에 없구나. 그날 밤 이불 속에 몸을 감추고 지금껏 억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렸다. 흘러내린 눈물이 베개를 흥건히 적셨고, 그렇게 축축해진 베개를 베고 잠에 들었다.
- 2018년 4월 10일
그날 전화 한통이 왔다. 받아보니 다름 아닌 엄마의 목소리였고, 이미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6개월만에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비현실감이었다. "잘 지내고 있지? 엄만 계속 네 생각했어, 우린 이제 한국에서 자리 잘 잡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 순간, 지금까지 메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했다. 그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탈북자 신분의 엄마가 남한으로 가는 데는 위험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난 그 생각에 매일같이 엄마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오늘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을 듣게 된 거다.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마음은 풀렸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 속에 기쁨이 한가득 차서 울 틈이 없었다.
- 2019년 10월
"응, 나 이제 공항에 도착했어. 8시 정도면 집 도착할 것 같아." 엄마가 중국으로 돌아오셨다. 그날은 1년 만에 엄마를 만나는 날이었다. 집을 깔끔히 청소하고 엄마를 기다리는데, 몸을 가만 둘 수가 없어 이리저리 왔다갔다했다. 기쁘면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엄마를 기다리는데, 곧 불빛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엄마를 껴안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와 난 서로를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 2020년 6월 20일
2019년 말, 코로나가 터졌고, 5개월동안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살았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바이러스를 보며 엄마를 당분간 또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내가 철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맘때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내가 자라서 그런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친구의 어머니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를 보기 위해 학교로 왔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비 오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던 때였다. 우리가 타고 가던 전동 삼륜차가 고장이 나 도저히 움직이지 않자, 엄마는 차에서 내려 혼자 차를 밀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려 하자 오히려 내게 화를 내며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가 되어서야 불빛 아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홀딱 젖어버린 엄마를 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냥 웃으며 얼른 가서 자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꼭 성공해서 엄마한테 보답하겠다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던 밤들에는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난 한번도 엄마를 덜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지만, 굳이 남에게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 2020~2024
지금의 나는 엄마 옆에 있다. 며칠 전에는 엄마, 여동생과 같이 배드민턴을 쳤다. 여동생과 함께 엄마의 생신도 축하해드렸다. 여동생은 어머니에게 수작업으로 꽃을 만들어 드렸고, 나는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드릴 케이크를 샀다. 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비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르마 사이에 있는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에 띄었다. 엄마가 흰머리가 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다. 엄마의 소원은 모두 나와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단지 엄마와 남은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꿈 속에서 셀 수도 없이 그리던 장면이 눈앞에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다른 어떤 누구도 느끼게 해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난 이제 더는 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가슴 속에 있던 끝없던 그리움도 더 이상 없다.
제목 : 가을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의 맑고 푸른 하늘을 좋아하고, 춤추듯 떨어지는 낙엽을 좋아하며, 시원하고 쾌적한 기후를 좋아한다. 여름의 뜨거운 더위도 없고, 겨울의 추운 날씨도 없다.
가을은 사람들에게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동물들에게는 겨울을 대비해 음식을 모으는 신호의 계절이고, 식물에게는 생명의 끝을 의미한다. 또한 가을은 시를 쓰기에 적합한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다. 들판에는 사과가 익는다. 어렸을 때는 사람 없는 들판에서 몰래 사과를 따서 먹곤 했다. 어렸을 때는 자주 부모님과 함께 들판에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거나 밤을 줍는 일을 했다. 아버지께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걸 배우면서 정말 즐거웠다. 피곤하면 옆에 앉아 쉬면서 간식을 먹으며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익은 밤이 많이 땅에 떨어져 있었다. 밤의 껍질은 가시가 있어서 밤을 주울 때는 장갑을 꼭 끼고 해야 했다. 땅에 커다란 밤이 널려 있을 때면 아버지와 누가 더 많은 밤을 주울 수 있을지 경쟁하곤 했다. 밤을 주운 후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가져가면 일부는 집에서 먹고 나머지는 팔아서 돈을 벌었다. 고구마도 가을의 대표적인 수확물 중 하나이다. 고구마는 땅속에서 자라는데, 사람들은 땅을 파고 고구마를 캐낸다. 고구마는 정말 맛있다.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찐 고구마도 맛있다. 더 중요한 것은 고구마를 말려서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간식으로 먹기에 좋고,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된다. 수확이 끝날 무렵, 사람들은 고구마를 팔아서 돈을 번다. 고구마의 품질이 좋을수록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가을은 또한 시적이고 감성적인 계절이다. 떨어진 낙엽이 깔린 작은 길을 걸으면 발밑에서 "사사"하는 소리가 난다.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 같다. 가을은 또한 그리움의 계절이다. 이 계절에는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척을 그리워하고, 지나간 아름다운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현재의 소중한 순간을 더욱 간직하게 된다.
가을은 찬란함과 고통, 노력과 도전이 담긴 이야기이다.
제목 : 老王(왕 씨)
마을에 괴짜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밤에 불을 켠 적이 없고, 집에 있는 텔레비전도 켜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수군거려도 그는 조금도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속해서 그러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 번은 마을의 한 노인이 그에게 "왕 씨, 한 달 전기세가 왜 그렇게 적은가?"라고 물었다.
"아이고! 절약하면서 살면 자연스럽게 적어지지요." 왕 씨는 별것 아닌 듯 얘기했다.
"전력공사에 도리어 전기요금을 보태달라고 하지 그래!" 노인이 말을 마치자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바라는 바이지만, 전력공사에서 해주느냐가 문제죠."라고 왕 씨는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왕 씨가 올해 칠순을 앞뒀다는 사실이다. 반백이 넘은 사람이 왜 돈을 아끼려고 하는 것일까? 다음 날, 나는 왕 씨가 15.50 위안의 전기 요금을 내러 가는 것을 봤다. 내가 본 것 중 가장 적은 액수였다. 나는 왕 씨에게 물었다.
"왕 씨 아저씨, 나이도 적지 않은데 말년을 즐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절약할 때는 절약하고, 쓸 때는 써야지." 왕 씨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는 늘 절약하는 것 같았는데, 대체 언제 쓴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왕 씨는 농민인지라 자신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1년 동안 장을 보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왕 씨는 반찬은 찌꺼기가 아닌 이상 버리는 법이 없었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접한 왕 씨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그가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왕 씨는 돈을 주고 병을 고치려 하지 않고 자신이 혼자서 병마를 물리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왕 씨를 치료하기 위해 돈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왕 씨를 한 번 보러 가기로 했다. 나무 문을 밀어보니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차가운 침대에 누워 있는 왕 씨를 보니, 뼈만 앙상하고, 살아있는 사람의 숨결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왕씨 아저씨, 좀 어때요?" 왕 씨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반복했다. 이번에는 왕 씨가 마침내 대꾸를 해줬다. "어떻게 왔소?" 왕 씨는 놀라면서도 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보러 왔죠. 아내분은요?" 나는 의혹스러워서 물었다. 왕 씨는 답하기를 꺼리는 기색이었다. 나도 눈치를 채고 계속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 물었다.
"몸은 좀 나아졌습니까?"
"얼마 안 남았을 거요." 말을 마치자마자 왕 씨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왕 씨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리를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에 따르면 왕 씨의 아내는 이미 새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왕 씨가 모아둔 돈도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며칠 뒤, 쥐 죽은 듯 조용하던 왕 씨의 집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알고 보니 왕 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왕 씨의 아내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매몰찬 얼굴에 가득한 회심의 미소를 보고 나는 왕 씨에 대한 동정심이 생겼다. 그렇지만 왕 씨의 장례식에서는 그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지 않았다. 왕 씨는 그 나이에 아끼고 아껴 조금 모아둔 돈을 전부 아내에게 빼앗겼다. 인생에서 뜻을 이루었으면 즐거움을 만끽해야 하는 법, 인생이 뜻대로 될 때 마음껏 즐겨야 한다. 인생의 전반 몇 십 년은 열심히 일하고, 후반 몇 십 년 동안은 마음껏 즐겨야지!
재밌게 읽으셨나요? 반석학교 학생들이 매 회차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써내려간 이야기들이랍니다. 모두들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또 진심을 담아 풀어내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서 앞으로 출간될 북소리팀의 책 <같은 하늘 아래서>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서>는 저희 팀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목표, 북한이탈청소년들의 자전적인 글, 그리고 이를 책으로 편찬하기 위한 북소리팀의 여정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1장- 인식 변화를 위한 북(Book)소리
1장은 북소리팀의 배경과 목적, 활동 내용, 그리고 반석학교에 대한 간단한 소개 글로 이뤄졌습니다.
2장- 북한이탈청소년들의 목소리
2장에서는 반석학교 학생들이 공들여 쓴 이야기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3장- 서로를 잇는 웃음소리
3장에서는 북소리팀과 반석학교 학생들이 진행한 10번의 교류회차를 소개드립니다. 특히 브런치 매거진에서 마저 소개드리지 못한 8, 9, 10 회차의 상세한 활동 내용을 추가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4장- 변화를 부르는 종소리
4장은 북한이탈청소년들이 직면한 현실과 어려움, 그리고 이러한 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개인 인터뷰 내용과 더불어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최은영, 김택빈 선임연구원님의 전문적 시각을 접해보실 수 있습니다.
기대가 되시나요? 무엇보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번역TF의 활발한 번역 활동 덕분에, 북소리팀은 반석학교 학생들과의 언어의 장벽을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 감사하게도 표지, 일러스트 등 책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서울대학교 디자인 연합(snusdy) 소속의 학생들이 맡아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원 덕분에 이 책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세 달 간 브런치 매거진을 통해 여러분들께 여섯 번의 이야기들을 전해드렸습니다. 저희는 새해에 완성된 책과 함께 7번째 브런치 스토리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이 브런치스토리 시리즈가 독자분들로 하여금 출간될 책에 대한 흥미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