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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북소리

출간회 사전질문을 위한 글 미리보기 (전체버전)

북한배경청소년이 풀어낸 가족, 신념, 우정, 그리고 사랑 이야기

by 꿈꾸러기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울대학교 학생사회공헌단의 '북소리 팀'입니다.

'북소리'라는 팀명은 책(book) 출간을 통해 북(北)을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활동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한 학기 동안 북한배경청소년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풀어낸 글들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습니다. 북한배경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반석 학교'와 함께 문화교류 수업, 글쓰기 수업을 10회에 걸쳐 진행하였으며 마침내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인 <같은 하늘 아래서>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월 17일 18시부터 20시까지,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153동) 건물에서 책 출간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출간회에서는 서울대학교 교수님의 축사, 북한배경청소년의 글 낭독, <같은 하늘 아래서> 책 판매 및 사인회, 북토크 등을 진행합니다.


북토크 진행을 위해 사전질문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래의 글을 읽고 작가에 대해, 글에 대해 궁금한 점을 구글폼에 질문으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출간회 참여 신청 및 사전 질문 작성을 위한 구글폼 링크는 글 가장 아래쪽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1] 망설임 없이 너를 향해 달려가다


작가 : 케이크 (필명)


왕수닝은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러시아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이중 언어 학교에서 요안을 만났다.

중학교 2학년 때 두 사람은 같은 교실에서 앞뒤 자리에 앉게 되었고, 자주 함께 어울리며 친해졌다.

“야, 내 머리끈 왜 가져가?”

“내 여자 친구 머리 묶어 주려고.”

요안은 왕수닝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방과 후, 반 여자아이들이 왕수닝을 만만하게 보고 학교 문 앞에서 괴롭혔다. 요안은 친구들과 대화하던 중에 이 장면을 보고 바로 달려가서 그녀들을 왕수닝에게서 떼어 놓았다. 그리고 왕수닝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며 말했다.

“수닝, 네가 반격하는 법을 배워야 해. 내가 없을 때 네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알겠어, 하지만 학교랑 선생님들이 나한테 잘해주잖아. 괜히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결국 요안이 대신 선생님께 상황을 전달했고, 왕수닝을 괴롭힌 학생들은 퇴학당했다. 요안 또한 너무 충동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유로 정학 처분을 받을 뻔했지만, 선생님들은 안타깝게 여겨 경고 처분으로 마무리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되었다. 이 시기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였는데, 바로 이때 왕수닝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왕수닝은 요안과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급히 급식실으로 와 소식을 전했다.

“여기 조퇴증이 있어.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해. 너희 아버지가……너희 아버지가…….”

선생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요안은 조퇴증을 신청하지도 않은 채 걱정되는 마음에 그녀를 따라갔다.

병원으로 가는 길, 왕수닝은 계속 울었다. 세상이 조용해질 때까지 울었다. 요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어깨를 살짝 끌어안고 말했다.

“수닝, 내 말 들어. 너는 침착하고 힘을 내야 해. 선생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잖아. 너희 아버지가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도 있어.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해도 이제 집에 엄마 한 분만 남으셨어. 네가 기운을 잃으면 안 돼. 내가 늘 네 곁에 있어.”

그녀는 눈물을 닦고 요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한테 이렇게 잘 해줘서 정말 고마워.”

두 사람은 며칠 동안 병원에 머물렀고, 셋째 날 의사에게서 왕수닝의 아버지가 안전한 상태로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서야 두 사람은 안심하고 학교로 돌아와 수능 준비에 매진했다. 왕수닝은 말했다.

“아빠가 말씀하시길, 이번 사고 처리 비용을 부대에서 지원받았다고 하셨어. 아빠는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군대에 입대해 조국에 보답할 생각이래.”

이 말을 들으며 요안은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녀와 같은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왕수닝은 성적이 항상 좋아서 걱정이 없었다. 점수 발표 날, 두 사람은 함께 결과를 기다렸다. 왕수닝이 떨리는 요안의 손을 꼭 잡았다. 점수가 발표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껴안았다. 며칠 후, 두 사람은 국방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왕수닝은 요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우리가 해냈어!”

두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대학에 합격했을 뿐 아니라 조국에 대한 사랑도 가득했다.

대학 첫 겨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해였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껍게 쌓인 눈은 마치 그 안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안은 담배를 피우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러시아의 겨울은 항상 춥고, 땅은 단단하고 얼어붙어 있어. 그런데 이런 추운 날씨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어. 사랑하는 왕수닝, 난 이해가 안 돼. 우리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 가족 아니었어? 어떻게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왕수닝은 말했다.

“언젠가는 러시아의 겨울이 더 이상 이렇게 춥지 않을 거야. 전쟁터로 간 아이들의 어머니가 더는 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거야. 나라를 지키는 건 우리의 공통된 사명이라는 걸 알고 있어. 이건 얼마 전에 절에서 너를 위해 받은 평안 부적이야. 네가 늘 안전하기를 바라.”

2022년 겨울, 요안은 망설임 없이 전장에 투입되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함께 기차역까지 걸어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막상 헤어질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서로의 마음속에서 모든 것이 명확했고, 그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굳게 자리 잡아 있었다. 단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컸을 뿐이었다.


2023년 말, 한 작전 도중 왕수닝의 절친한 친구가 희생되었다. 친구의 옷을 정리하던 중 왕수닝은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러시아어로 쓰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총알이 가슴을 뚫고, 나는 땅에 누워 간신히 숨을 몰아쉰다.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건 고향의 국화와 너의 눈동자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편지를 읽자마자 그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친구를 잃은 슬픔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 또한 이런 일이 닥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2024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왕수닝과 요안은 서로의 손을 잡고 민간 결혼등록소에 가서 혼인 신고를 하고, 전우들이 지켜보는 와중에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사람들이 왜 이런 시기에 결혼을 하느냐고 물으면 왕수닝은 늘 요안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전쟁의 심각성 때문에 두 사람의 부대는 통합되었다. 하지만 같은 전쟁터에서 다른 장소로 각각 파견되었다.

이번 작전에 나서기 전 왕수닝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이 불편했다. 한바탕 전면전이 벌어진 후, 왕수닝은 폐허가 된 전쟁터를 걸으며 눈 덮인 땅 위에 남겨진 발자국과 흩어진 옷가지, 전사자들의 시신을 보았다. 슬픔과 동시에 요안의 안부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모든 것이 예고된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 요안과 같은 부대원인 파벨이 허겁지겁 달려와 그녀를 거의 밀칠 뻔하며 말했다.

“빨리 가서 확인해 봐. 침착해, 우리 모두 여기 있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하늘에서는 전투기가 계속해서 지상을 공격하고 있었다. 왕수닝은 폭탄을 피하며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가 여러 번 넘어졌다. 마침내 들것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시트를 들어 올린 순간, 그녀는 시신이 된 요안의 모습을 보았고,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억누를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동시에 그날의 불안감이 모두 설명되었다.

왕수닝은 요안의 옷을 뒤적이다 한 통의 편지를 발견했다.

“사랑하는 이여,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면 나는 이미 천국에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보드카를 삼킬 때, 나는 극동의 매서운 바람과 너의 깊고 매혹적인 눈동자를 떠올렸어. 파벨 코차긴과 세리오샤의 고향은 전쟁을 시작했어. 저녁노을 아래 농부의 아들 두 명이 서로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대지는 붉게 물들었지. 먼 미래에는 피로 붉어진 땅 위에서 두 정치인이 악수하며 화해하고 상인들은 수레를 가득 채워 본국으로 돌아가겠지만, 어머니는 묘비를 바라보겠지. 나는 우리가 원래 한 민족이었다고 생각해.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바라고 있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 전쟁이 없기를. 나는 세계 평화를 바라. 수닝, 네가 하늘에서 빛나는 불꽃을 보며 그것이 차가운 무기가 아닌 아름다운 폭죽이라고 느낄 때, 네가 아이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구조 요청이 아닌 노래라고 느낄 때, 네가 맡는 공기의 향이 화약 냄새가 아닌 자연의 풀과 나무 냄새라고 느낄 때, 그때 네가 고개를 들어보면, 예전의 친구들이 너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을 거야…….”

편지를 막 다 읽었을 때, 폭탄 한 발이 떨어졌다. 당시 현장에 있던 전우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요안의 시신이 파편이 튀는 것을 막아주었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왕수닝도 크게 다쳤다. 요안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지켜냈다.

유엔이 경고해 그날 밤 임시 휴전이 선언되었고, 공군 부대가 그녀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병원에서 지낸 6개월 동안, 그녀는 계속 휴전 소식을 기다렸다. 마침내 휴전 소식이 전해졌지만, 요안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낡아 빠진 머리끈을 손목에 감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이 2024년 11월이야. 요안, 거기선 잘 지내? 뉴스 봤어? 그 늙은이가 드디어 협상에 동의했대…….”






[2] 이별 후에는 끝없는 그리움이


작가 : 단풍 (필명)


— 2017년의 어느 날

그날, 가방을 싸 메고 등교하려던 순간, 엄마가 내게 말했다. 동생과 함께 한국에 가기로 했다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아 가만히 서서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던 것 같지만, 결국 여느 때처럼 난 등굣길에 올랐다. 사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의 준비도 분명 단단히 해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날로부터 며칠 전 엄마가 아빠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아빠의 거센 반대로 큰 싸움이 나 집안 분위기가 살얼음판이 됐었다. 그날 아빠가 그토록 강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결국 이 일을 아빠 몰래 진행하기로 결심하셨다. 그리고 그나마 의지할 수 있는 내게만 이를 귀띔해 주셨던 거다. 그래서 그날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심하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집에서 멀어질수록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찬바람과 눈물이 한데 섞여 얼굴을 흠뻑 적실 만큼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학교에 도착했고, 눈물을 닦아낸 후 학교로 발을 내디뎠다. 그날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엄마가 혹시 나를 보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만 했지만, 기다리던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평소처럼 사람들 사이를 헤쳐 집으로 향하는 익숙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평소엔 그 길목에 서 있던 그림자가 오늘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아팠다.

집에 와보니 이모들이 모여 있었는데, 보아하니 엄마가 떠났다는 소식을 모두 알고 오신 것 같았다. 날 보는 눈에서 모종의 연민과 의문이 섞인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갔다. “괜찮아, 나중에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와.” 난 이모들이 해주는 말을 들으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얼마 안 지나 그들이 모두 떠난 집에 아빠와 나 둘만이 남았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떠나기 전 하고 가신 물만두를, 그리고 아빠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봤다. 순간 주체 안 되게 눈물이 차올랐다. ‘이젠 정말 엄마가 내 곁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이불 속에 몸을 감추고 지금껏 억눌러 왔던 감정을 터트렸다. 흘러내린 눈물이 베개를 흥건히 적셨고, 그렇게 축축해진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 2018년 4월 10일

그날 전화 한 통이 왔다. 받아 보니 다름 아닌 엄마의 목소리였고, 이미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비현실감이었다. “잘 지내고 있지? 엄만 계속 네 생각했어, 우린 이제 한국에서 자리 잘 잡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순간, 지금까지 메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했다. 그동안 6개월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탈북자 신분의 엄마가 남한으로 가는 데는 위험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난 그 생각에 매일같이 엄마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그날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을 듣게 된 거다.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나도 모르게 대답이 툭 튀어나왔다. 마음은 풀렸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음속에 기쁨이 한가득 차서 울 틈이 없었다.


—2019년 10월

“응, 나 이제 공항에 도착했어. 8시 정도면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엄마가 중국으로 돌아오셨다. 그날은 1년 만에 엄마를 만나는 날이었다. 집을 깔끔히 청소하고 엄마를 기다리는데, 몸을 가만둘 수가 없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기쁘면서도 왠지 모를 긴장감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엄마를 기다리는데, 곧 불빛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엄마를 껴안으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마와 난 서로를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2020년 6월 20일

2019년 말, 코로나가 터졌고, 5개월 동안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살았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바이러스를 보며 엄마를 당분간 또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내가 철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맘때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걸 느꼈다. 내가 자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의 어머니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를 보기 위해 학교로 왔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비 오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오던 때였다. 우리가 타고 가던 전동 삼륜차가 고장이 나 도저히 움직이지 않자, 엄마는 차에서 내려 혼자 차를 밀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려 하자 오히려 내게 화를 내며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 겨우 집에 도착할 때가 되어서야 불빛 아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홀딱 젖어버린 엄마를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냥 웃으며 얼른 가서 자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꼭 성공해서 엄마한테 보답하겠다고. 그리움에 잠 못 이루던 밤들에는 사진을 보며 마음을 달래곤 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난 한 번도 엄마를 덜 그리워한 적이 없었다. 그저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운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지만, 굳이 남에게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 2020년~2024년

지금의 나는 엄마 옆에 있다. 며칠 전에는 엄마, 여동생과 같이 배드민턴을 쳤다.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 생신도 축하해드렸다. 여동생은 어머니께 수작업으로 꽃을 만들어 드렸고, 나는 어머니께 케이크를 사 드렸다. 소원을 비는 시간에 가르마 사이에 있는 어머니의 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께서 흰머리가 날 나이가 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다. 엄마의 생일 소원은 모두 나와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단지 엄마와 이렇게 남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꿈속에서 셀 수도 없이 그리던 장면이 내 눈앞에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다른 어떤 누구도 느끼게 해줄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난 이제 더는 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지금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가슴 속에 있던 끝없던 그리움도 더 이상 없다.






[3] 내 삶의 파란색


작가 : 22 (필명)


나는 파란색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항상 이유를 물어본다. 나도 가끔씩 파란색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2019년 여름이었다. 산 위에 앉은 나는 핸드폰에 있는 플레이 리스트를 누르고 햇빛을 받으면서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고 나무가 흔들리면서 나뭇잎이 조금씩 떨어졌다. 바람은 불지만 춥지는 않았다. 그때 노래 가사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나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흘러나왔다. 가사는 이러했다.


‘너는 파란색이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라고 말했다. 만약에 사랑이 없다면 어떨까 말했다.’


멜로디만 들었을 때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사가 왠지 모르게 끌렸다. 점점 나도 모르게 멜로디도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점점 그 가사 속에 있는 ‘파란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 파란색이 우울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노래 때문에 나는 오히려 파란색이 밝고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쭉 파란색을 좋아했다. 그 단순한 색깔이 마치 나의 성격 같았다.


나는 엄청 단순한 사람이다. 딱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을 만큼 단순하다. 올해 열아홉 살인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좀 더 조용하다. 내 나이대 친구들은 다 노는 것을 최고로 보고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게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오히려 별생각이 없다.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친구가 누구보다 더 많던 나는 지금 친구가 없다. 원래 친구가 많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없어지니 그게 더욱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혼자서 공부하고, 밥도 먹고, 카페 가고, 노래방도 갔다.


그랬던 내 삶에, 그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나에게 언니 같은 존재였다.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꾸준히 운동을 한 덕분에 몸매도 보기 좋았다. 깨끗하고 단정한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몸에 잘 맞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평범한 미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어떤 것에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 듯한 표정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가 매우 온화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의 성격은 나와 닮은 듯했고, 나를 끌어당겼다.


처음에는 언니하고 이렇게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언니에게 더 큰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한 사건 때문이었다. 몇 년 전 가을의 끝자락, 내 생일 이틀 전이었다. 나에게 생일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날에 불과해서 그 당시에는 생일을 잊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언니가 문자를 보내와 생일에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각종 기념일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의 기념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날,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상자를 하나 들고 있었다. 우리의 만남이 끝난 후 언니는 그 상자를 나에게 건네며 간단히 몇 마디를 하고 떠났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선물할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언니는 달랐다. 나는 도무지 언니가 무엇을 줄지 알 수 없었다.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을 안고 집에 돌아와 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에는 파란색 케이크가 있었다. 내 이름이 적힌 그 케이크를 보는 순간, 나는 오랫동안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그 케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이었다. 모든 것에 무관심해 보이던 언니가 나를 위해 파란색 케이크를 준비했다는 사실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내가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니가 알고 있어서 일부러 파란색으로 준비했다고 했다. 파란색 케이크를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원래 기념일이나 형식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동정을 받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편이었다. 하지만 케이크를 받은 후에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런 나 자신이 낯설었다. 원래라면 부담을 느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복잡한 걸까? 나의 필요를 진심으로 알아차려 준 사람이 오랜만에 나타났기 때문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언니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모든 것에 무심한 듯한 그녀가 나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이 정말 반전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계속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언니와의 만남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즐거웠다. 나는 평소 고집이 세고 내 생각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서 내 눈에는 다른 사람의 실수만 보였다. 물론 내 실수도 인지하고 고치려 노력했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언니와 함께하면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던 수많은 나의 실수를 발견했다. 언니는 나에게 그것들을 일깨워 줬고, 나는 그때마다 고쳐 나갔다.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언니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친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니와의 관계를 통해 ‘언니가 없었다면 내 잘못을 바로잡아 줄 사람이 없지 않을까?’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언니는 마치 파란색 같은 존재였다. 노래 가사 속 그 푸른빛처럼, 내 삶을 가득 채웠다. 지금도 언니에게 나는 어린아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 언니는 이미 내 삶 깊숙이 스며들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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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orms.gle/kuHJkFh4Gn9zu7HQA


*작가님들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한 질문은 삼가주시고 지난 한 학기 동안 책 편찬을 위해 작가님들과 북소리팀이 달려온 여정 그리고 글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북소리팀의 여정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정의 마침표를 장식할 도서 출간회에도 마지막까지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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