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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나 May 29. 2021

사랑니를 뽑았다. 정신과 상담을 졸업한 날.

“이제 상담 그만 오셔도 돼요. 종결합시다”

사랑니 두 개를 뽑았다. 입구부터 긴장한 서른두 살 환자의 출현. 의사 선생님은 흔들리는 동공이 불쌍해 마취와 진통제를 탈탈 털어 쏴주셨고 그것도 모자라 고양이 인형까지 손에 쥐어주셨다. 그러니 아플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어려웠던 점이라면 아래쪽 사랑니가 아주 고집을 부렸다는 것. 치과 원장님은 꽤 오랜 시간 그 이빨과 전투를 벌이셔야 했고, 나는 이 고통 없는 발치와 어울리지 않게 이상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치과 전에 들린 정신과 상담실에서 시작된다. 한 달만에 찾은 상담이었다. 평소 같이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20분 정도 근황 얘기를 했을까.


“이제 안 오셔도 돼요. 이 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어요. 종결합시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말.

원장님이 내린 공식적인 상담종결 선언이었다.


언젠가는 이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겨우 15 회차만이었다. 매주 가던 상담이 격주가 되고, 더 괜찮아진 것 같다며 한 달에 한번 점검 차 가기 시작한 것도 벌써 3개월째였다. 그동안 어쩌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단한 마음밭을 매일같이 느꼈으니까. 하루를 멀다 하고 남편에게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을 계속할 만큼.


이전과는 완전 다른 인생을 산다고 느꼈다. 어떤 일에서도 목적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결실일 거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가로막았던 심리적 장애물들이 썰물처럼 걷히니 본연의 모습 그대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자연스레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성공경험이 쌓여가고 그렇게 얻은 자유로움을 여실히 느끼던 요즘이었다.


하지만 힘든 시간 동안 가장 의지했던 전문가의 공표는 역시 느낌이 달랐다. 정말 치료됐구나. 이제 정말 괜찮구나. 안도감은 순식간에 내 모든 곳을 감쌌고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진짜 너무 감사해요. 원장님.
저 근데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길로 사랑니를 뽑으러 간 것이다. 그래서 고집불통 이빨은 아주 오랜 시간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고 있던 기억들을 연상하게 했다. 덴티스트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감은 눈 앞에서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았던 장면들이 끊임없는 반복 재생 중이었다.


왜 다시 떠오르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낌이 왔다. 기억에서 자취를 감추기 전 마지막 출현이구나. 이빨처럼 이제 정말 내 몸에서 빼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이어 슬픈 건지 기쁜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얼마 시간이 지났을까. 원장님이 완료됐다는 의미로 어깨를 톡톡 쳤다. “다 뺐어요. 안 아팠죠?”


동시에 눈을 가리고 있던 초록천이 벗겨지고. 오 마이 갓. 물기 가득 찬 벌건 눈과 볼을 타고 흐르던 놈들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순간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 아이 참 아파서 그런 게 아닌데. 인형도 꽉 쥐지 않을 만큼 안 아팠는데. 큰일 났다. 으아


“아팠어요?!!!” (도리도리)
“그럼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끄덕끄덕)


이렇게 하루가 갔다.


겁쟁이 어른이라는 누명과 함께

염증을 일으켰던 사랑니도,

발목을 잡았던 아픈 기억들도,

모두 내 몸에서 빠져나간 날.



피가 흥건했던(?)

졸업식 기념으로

짜장면 대신 죽을 먹는다.


힘겨웠던 30년

이제 진짜 안녕:-)


_


자기만의 방의 진짜 마지막 이야기인 것 같네요. 상담 치료를 한다고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졸업을 하게 돼 이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었어요.

예전과 이어지는 사사로운 글이라 이전 글 모두 삭제한 것처럼 2주 정도만 발행해두려 합니다. 브런치로 꾸준히 봐주셨던 분들에게 엔딩은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이제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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