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나 May 02. 2019

퇴사신고서 in 포르투갈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가기로 하다.


요즘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 ‘한 달 살기’가 열풍인데요. 유행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혼자서 12일간 포르투갈 살기를 마치고 오늘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떠나기 전엔 짐 싸는 게 그렇게 귀찮았는데, 역시 유희왕답게 제 집처럼 지내며 참 즐거웠다는 후문입니다.

참 사랑스러운 도시였습니다. 따뜻한 햇살의 날씨, 새파란 하늘,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바다는 물론이고 파스텔톤의 집들과 노란 트램. 그리고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까지. 직항만 있었으면 명절마다 엄마집 대신 가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도시를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보통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도시를 기억합니다. 이번 포르투갈도 사람으로 배웠습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친해진 리스본의 화가 Miguel, 포르투에서 사진작가를 하는 맛집 백과사전 Jose. 아침마다 제 출근지였던 포르투 카페의 주인아저씨 Dudu, 큰 힘이 되어주었던 두 에어비앤비 호스트 Ruisa와 Andre.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들로 포르투갈의 경제와 사회 전반을 훑어주었던 친절한 우버 아저씨들. 이들과 꼭 다시 포르투갈에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큰일이네요.

현존하진 않는 인물이지만 리스본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투어로 알게 되어 읽게 된 페소아의 책은 이번 혼자 여행의 가장 힘이 돼준 친구였습니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최근까지 페소아를 연구하시는 김한민 작가님의 책 덕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도시 전체가 사랑하는 인물을 알게 되는 것처럼 단번에 사랑에 빠지는 마법은 없더라고요.

혼자 다녔기에 세계 여러 도시의 여행자들과도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PE를 퇴사하고 혼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 중이었던 뉴요커 Teresa와 매년 부부끼리 유럽을 여행한다는 네덜란드 부부 게를린과 마리엣. 바에서 만나 영국 이야기를 들려준 언니 같은 동생 Mary, 파라과이에서 살며 스페인 출장 중 잠시 들렸다는 한국분까지.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다닐 수 있었던 건 이들 덕분입니다. 비를 피해 들어온 가게에서 우연히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떤다거나 도시의 여러 길목에서 다시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주고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포르투갈에서 살다시피 한 긴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이달 중순 스얼을 퇴사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대단하신 스얼의 터줏대감 정욱님과 기대님, 그리고 동료라는 이름에 제가 부끄러울 만큼 뛰어난 나리님, 승아님, 인경님, 명진님과 1년 2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참 재밌게 일했었는데 그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스얼은 제가 뛰어난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받으며 성장한 곳이라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스얼 체류기를 마치고 다음으로 떠나는 여행의 행선지는 스타트업입니다. 원래 스타트업 출신답게 힘들지만 함께 울고 웃으며 뛰었던 즐거움을 잊지 못해 결정하게 되었는데요. 어느 곳인지는 빠른 시일 내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아직 여행 짐도 풀지 않아 따로따로 연락드리고 인사를 못 드리는 점 이해 부탁드려요 ㅠㅠ

스얼 여정을 마치고 다음 체류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리스본에서 읽었던 페소아의 <불안의 책> 내용 중 무척 와 닿았던 구절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삶이란 우리가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여행자 자신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다.”

다 쓰고 보니 스얼레터체네요. 습관이란 게 이렇게 무섭...

작가의 이전글 하메식당을 시작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