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대단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이유는 이것이 발생할 경우 이익을 얻는 편과 손해를 보는 편이 생겨 사회가 승자와 패자로 양분되기 때문이다.
-화폐경제학(밀턴 프리드먼, 2009, 한국경제신문) 중에서
퇴근길,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딸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울린다.
“아빠, 집에 올 때, 꼭 아이스크림 사 와!”
그렇게 들린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종류를 살핀다. 아빠가 30년 전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아직도 팔리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에 ‘투게더’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결제를 하려고 신용카드를 전달하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6,000원? 어릴 적 1,000원에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이제 6,000원?’
30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다른 재화에 비해 비교적 덜 올랐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것이다. 이제 화폐는 온라인 상의 숫자로 거래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물가는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사실에 둔감했을지 모른다. 가까운 마트에 가봐도 이제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재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 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화폐경제학(밀턴 프리드먼, 2009, 한국경제신문) 중에서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이를 감내하고 받아들인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보다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나에게 이득이란 점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이제 인플레이션률이 낮게 유지되면서 개인의 소득은 증가해 구매력이 증가하고, 이를 통해 지속성장 가능한 경제가 자본주의 사회의 이상향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상황이 계속 유지될 수 없음을 과거 역사를 통해 혹은 경험을 통해 우리들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움직인다. 이제 실물 화폐는 로또를 사거나 세뱃돈을 줄 때만 필요할 뿐, 현금이 없어도 삶을 영위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이제 화폐는 모니터 속에, 핸드폰 화면에 존재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한 달간 열심히 일한 대가로 월급이 은행을 통해 지급되지만, 실제로 이를 모두 찾아 현금으로 거래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은행은 예금자의 돈을 모두 현금으로 준비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국가에서 정한 지급준비율, 즉 일정 비율의 현금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합법적인 돈놀음을 할 수 있다. 은행은 예대마진, 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로 이익을 내는 존재임을 감안하면, 대출이 많을수록 이익이 커진다.
자본주의 사회는 대출을 통해 성장한다. 대출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야만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 누군가가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가의 가전제품을 할부로 구입했다면 대출을 통해 소비가 일어난다. 이는 상대방의 소득이 되고, 늘어나는 소득으로 인해 신용이 증가하며, 이로 인해 더 많은 한도로 대출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즉, 대출의 증가는 소비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 원리로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렇기에 중앙은행은 이에 발맞춰 점진적으로 화폐 발행을 늘려야만 한다. 부채가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점진적으로 늘어야만 소득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채 증대를 위해 지속적으로 화폐를 발행해서 은행에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부는 화폐를 지속적으로 발행해야만 한다.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대출의 증가, 소비의 증가, 경제성장이란 선순환이 이뤄지면 경제 주체들은 일정 범위의 인플레이션은 감내하게 된다. 정부, 기업, 가계 모두가 소득이 증가하면서 물가상승률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이상향과 같은 선순환의 구조가 오래도록 유지되면 좋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지속적인 화폐 공급으로 인해 모든 경제 주체들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물가가 상승하게 되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통해 화폐공급을 조절하게 된다. 화폐 공급을 서서히 축소하고, 금리인상을 통해 시중에 풀린 돈을 다시 흡수하면서 다시 안정적인 물가상승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문제는 금리인하, 금리인상이란 조치를 취해도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시차를 두고 효과가 나오게 된다. 만약 금리를 인상해 중앙은행이 목표로 하는 안정적인 물가상승률도 돌아온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자산시장은 늘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금리인상이란 효과가 나오기도 전에 탐욕이 이성을 압도하게 되면 자산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하고 중앙은행은 과거와 달리 서둘러 금리를 인상한다.
이 시기에 은행은 서둘러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한다. 대출이 감소하면서 경제 주체들의 소득은 줄어들고, 이로 인해 대출이 연체되면서 은행은 담보를 처분하는 등 악순환의 사이클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혈액인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서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되며 다시 대출이 연체되면 은행도 파산할 수 있게 된다.
경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중앙은행은 다시 서둘러 금리를 인하하고, 화폐 공급을 늘리게 된다. 정부는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사회 전반에 돈이 스며들도록 거대 예산을 편성하게 된다. 이게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의 원리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찾아오는 이유이다.
인플레이션의 승자와 패자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를 보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금융시장은 마치 불이 나서 연기가 자욱한 건물에서 좁은 문으로 서로 탈출하기 위해 아우성인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당시 대학교 4학년이었는데, 사실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제2의 IMF가 왔다는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서야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금융자본의 탐욕이 만들어낸 파생상품이란 괴물이 전 세계를 불황이란 어둠 속에 밀어 넣었다.
경기가 과열되기 시작하자 미국 중앙은행 FRB는 2005년 1월 2.25%였던 기준금리를 2006년 6월 5.25%까지 1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빠르게 인상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금리인상에 대한 효과는 시차를 두고 효과가 나오기 시작한다. 물가는 비교적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가 되었지만, 실업률이 증가하기 시작해 대출이 연체되기 시작하자, 2007년 10월부터 다시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혈액인 돈의 흐름이 정체되기 시작하자 다시 금리를 인하에 공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여기서부터 경제의 톱니바퀴가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2008년 9월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미국 중앙은행은 불과 3개월 만에 기준금리 2%에서 0.125%로 급격하게 낮춘다. 2008년 4분기 소비자 물가지수는 -2.8%가 되면서 디플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 온 것이다.
게다가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소비가 줄면서 기업이 도산하고, 이로 인해 대출이 연체되면서 정부가 은행에 돈을 수혈해 살려야만 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직업을 잃고, 대출 연체로 인해 집을 잃게 되었다. 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와 투자은행을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물론 금융자본의 탐욕에 의해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 너무 과도한 대출로 소비를 한 대가이기도 하다. 디플레이션은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서둘러 금리를 낮추고, 화폐를 공급한다.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2%에서 0.125%로 급격하게 낮추고,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했을 시에 2배가 넘는 화폐를 발행해 시장에 공급하기 시작한다. 당시 FRB의 장 벤 버냉키는 헬리콥터에 타고 돈을 뿌리겠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린 효과는 2009년 2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업률은 2009년 3분기를 정점으로 서서히 낮아졌다. 다시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되면서 통계상으로는 안정을 찾는 듯했다. 미국 중앙은행의 발 빠른 대처로 일단 급한 불은 진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괴리가 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했고, 크게 줄어든 소득으로 인해 당장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산시장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화폐공급을 늘리겠다는 발표 만으로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디플레이션의 상흔이 미처 치유되지 못했는데, 자산시장은 현실 경제와 괴리가 생긴다.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 인플레이션으로 전환되더라도 여전히 실업률은 높기 때문에 다수는 실업수당 등으로 연명하는데, 소수의 부자들은 자산시장의 활황을 누리면서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지게 된다.
부채를 갚지 못해 디플레이션의 시대에 은행이 강제로 처분한 자산을 싸게 취득한 것도 모자라 인플레이션 시대를 누리게 되면 부자의 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해 부채가 증가하지만, 정부와 중앙은행에 공급하는 유동성 덕택에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은 상승한다. 돈의 효과가 나타나 경제성장이 괘도에 오르게 되면 인플레이션의 승자와 패자로 나뉘게 된다.
2021/01 현재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발생한 디플레이션이란 대형산불이 아직 진화되었다고 판단하기도 이른 시점이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조해서 서둘러 금리를 인하하고,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시장에 공급되고 있지만, 아직 돈의 효과가 나오기 시작하다고 보기 힘들다. 현재 자산시장의 활황은 이런 일련의 정책으로 인해 곧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뿐이다.
미국은 금융위기의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코로나 19란 돌발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막대한 돈이 풀리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이 그동안의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아무리 세심하게 운전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인플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너무 많은 모르핀을 처방한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통찰력이 앞으로 도래할 인플레이션 시대의 승자와 패자로 양분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