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너머에 달이 있어요.”
깎은 손톱처럼 가는 달이 걸려 있었다.
불꽃이 떠오르면 그것은 사라지고, 불꽃의 빛이 사라지면 슬슬 모습을 드러냈다.
-종이달(가쿠다 미쓰요, 위즈덤하우스, 2014)
플라자 합의로 인한 일본의 변화
1985년 9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재무장관들이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모였다. 미국 레이건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과 감세로 인한 재정수지 적자, 달러 강세로 인한 미국 경쟁력 상실과 일본과 독일의 부상으로 인한 무역수지 적자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이를 환율 조정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당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고, 곧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화를 부르지 않았을까?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절상하고, 미국 달러를 절하하는데 합의한다. 이로 인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게 되었다.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엔화의 가치는 약 4년의 시간 동안 40% 이상 뛰었다. 엔고로 인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1985년 6.3%에서 1986년 2.8%로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다. 1985년 5.0% 금리를 유지하던 일본 중앙은행은 1987년 2월 2.50%까지 서둘러 금리를 내렸다. 엔고로 인해 소비자물가가 낮게 유지되었고, 금리를 낮추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자 자산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한다.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해서 엔화가 너무 빠른 속도로 오르니, 일본 중앙은행은 급하게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다시 높은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은 완만하게 증가하던 부채가 급속도로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으로 인해 일본 주택 가격과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오르게 된다.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자산시장이 폭등하자, 낙관적인 전망이 주류를 이뤘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인해 도심에서부터 외곽까지 공급이 활성화되고, 돈이 넘치다 보니 은행은 담보능력이 부족하거나 소득이 낮은 계층에도 대출을 해주었다. 넘치는 유동성에 손쉬운 대출,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자산시장, 누구라도 욕심에 눈이 멀게 될 수밖에 없다. 자산시장의 활황은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다.
일본의 자산버블시대
돈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어째선지 보이지 않게 된다. 없으면 항상 돈을 생각하지만, 많이 있으면 있는 게 당연해진다. 100만 엔 있으면 그것은 1만 엔 100장 모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 처음부터 있는, 무슨 덩어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은 부모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그것을 누린다.
-종이달(가쿠다 미쓰요, 위즈덤하우스, 2014)
소설 ‘종이달’은 일본의 달콤했던 자산시장의 버블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리카는 은행의 계약직 사원이다. 리카는 대규모 토지보상금으로 인해 돈의 여유가 있는 고객들을 관리한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그들의 돈에 손을 대는데 대다수가 노인이라서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번 남의 돈에 손대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횡령액이 커지게 된다. 평범한 주부일 때는 100엔을 절약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후에 남의 돈을 펑펑 쓰는 변해가는 모습 속에 돈에 무감각해진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대학생들은 구직보다 주식에 재능이 있다고 판단해서 전업투자를 꿈꾼다. 무섭게 오르는 자산 가격에 대출을 받아 투자를 늘리고, 확정되지 않은 이익을 미리 끌어다 사치품에 대한 소비를 늘린다. 이 행복은 영원할 것 같다는 착각으로 인해 돈이 돈으로 보이지 않는 달콤한 시절. 부채로 쌓아 올린 자산이란 성은 금리인상을 계기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물론 외부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일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까지 더해지며 과도하게 부풀었던 버블이 터지자 장기간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어떻게든 경제성장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확장적 재정정책을 지속적으로 취한 일본 정부는 GDP 대비 부채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고, 과거보다 더 많은 돈을 풀어 현재 불황은 벗어났다. 하지만 자산시장의 과도한 버블이 형성되어 터지게 되면 쉽게 치유될 수 없는 큰 상처가 남게 된다는 것을 그들의 과거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
과거 일본의 자산버블과 현재 우리의 상황이 겹쳐 보이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우리의 경제상황이 일본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강제로 엔화가 절상되는 일련의 조치들이 선행되었다. 우리나라도 과거 대비 원화가 강세이긴 하나 미국의 재정정책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시장의 흐름이지, 외부적 요건으로 인해 단기간에 빠른 속도로 절상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일본을 통해 현재 우리의 상황을 짚어볼 수 있다면 이것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1년 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 게다가 최근 코로나 19까지, 최근 10년 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위에 일련의 사태들로 인해 최근 10년 사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5.25%에서 제로금리인 0.5%까지 인하하였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생계의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역성장을 하는 와중에 저금리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인해 넘치는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집중되면서 현실 경제와는 달리 움직이고 있다. 특히 지가의 상승률이 눈에 띄는데 지난 10년 동안 일본 버블 시기에 육박할 정도이다. 특히 2015년 이후로 상승폭이 더 가팔라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코스피 시가총액과 과거보다 더욱 큰 격차를 보이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일본의 자산 버블이 터지면서 남긴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가부채로 반영되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가는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면서 GDP 대비 240%라는 충격적인 비율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현재 전 세계적인 저금리와 돈 풀기에 힘입어 최근 다시 크게 증가함이 관찰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GDP 대비 국가부채는 45% 수준으로 비교적 잘 관리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최근 부채가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여력에도 불구하고, 재정정책에 있어서 비교적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개인부채가 GDP 대비 너무 높다는 점이다.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취하지 않아서 코로나로 인해 생계가 막막한 자영업자들과 실직한 개인들이 버티기 위한 부채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의 GDP가 우리보다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과거 자산 버블 시기의 일본 개인 부채비율보다 우리나라 개인의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은 향후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이는 위의 자료만 단편적으로 놓고 봤을 때 생길 수 있는 우려이다.
2019년 가계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순자산 대비 금융부채의 비중은 극히 적기 때문에 문제 될 수준은 아니라 판단된다. 또한 금융자산이 부채보다 많기 때문에 GDP 대비 개인부채가 많은 것이 부채 총량을 관리해야 할 정도로 위험 수준이라 보기 힘들다. 다만 비금융자산의 비중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자산이 한쪽으로 편중되어 점이 위험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같이 저금리 상황에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는 자산의 쏠림 현상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시기가 왔을 때, 비금융자산은 바로 현금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편중된 자산을 어떻게 잘 배분하느냐가 미래에 어느 날 다가올 수 있는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GDP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주택담보대출은 890조 수준으로 순자산 9,300조, 금융자산 3,981조에 비해 낮기 때문에 위험한 수준까지는 아니라 볼 수 있다. 다만 저금리와 맞물린 유동성 공급으로 인해 최근 들어 주택담보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이 관찰된다. 이로 인해 집값이 상승하고, 자산의 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과거의 일본과 다른 경제환경이지만, 그들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일은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선택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거의 없었던 초유의 사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시장에 풀렸다. 그런데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전파로 이때와 비교가 되지 않는 막대한 자금이 단기간에 풀리고 있다. 현대 금융의 체계가 잡힌 이후로 이런 막대한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또한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정부는 초거대 예산을 편성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이 돈은 앞으로 역사상 가장 거대한 버블은 만들지 모른다. 그리고 유동성 파티가 끝나면 그 상처는 얼마나 클지, 이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각국 정부는 코로나로 인해 당장 사망할 수도 있으니 돈이란 모르핀을 무한대로 처방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부작용은 분명 우리의 상상 이상이 될 것은 분명하다.
다시 유동성을 흡수하기 시작할 때, 우리가 경험한 것 이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주택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대규모 공급정책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주택공급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동안 금리인상이 맞물리게 될 것이란 점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 불황 국면에서는 아무리 재무적으로 우수한 기업도 현금이 말라 망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편중된 자산구조를 미리 조금씩 개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레버리지는 계층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다리가 사라졌을 때 날개 없는 추락을 만들 수도 있다.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바라볼 때는 황홀감에 취할 수 있지만 이는 잠시일 뿐이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그 너머에 깎은 손톱과 같은 초승달이 있을지, 보름달이 있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