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화폐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불속에서 오줌을 누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만 얼마 가지 않아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돈의 정석(찰스 윌런, 부키, 2020) 중에서
2008년 9월 리만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외부 충격에 취약하기에 환율시장이 널뛰었다. 2007년 달러당 900원을 깼고,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대다수의 예상을 뒤집었다. 불과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1,600원에 육박할 정도로 급격한 약세로 전환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IMF의 트라우마가 남은 우리 국민들은 원화를 팔고 달러로 바꾸기 위해 은행 창구가 북적거렸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달러를 팔고 원화로 바꾸는 사람들로 은행을 가득 메웠다 한다. 한쪽에서는 달러를 달라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화를 원하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원화가 계속 강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에 수출이 많은 중소기업 대표는 속이 탄다. 1달러에 1,000원은 해야 이익이 남게 되는데 900원대에 머물고 있고, 앞으로의 전망에 손해보고 수출해야 하는 상황까지 닥칠 수 있다. 애가 타는 상황에서 주거래은행이 달콤한 제안을 한다. 키코라는 상품에 가입하면 원화 강세로 인한 손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약 환율이 반대로 움직였을 때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달콤한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리고 환율이 1,600원이 되자 그 분야 최고의 기술을 가진 강소기업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흑자도산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반대로 완구를 수입하는 사장님은 웃음이 절로 날 수밖에 없다. 원화 강세로 가외 수입이 생긴 탓이다. 1,000원에 수입하던 완구가 900원으로 떨어졌으니 100원의 부가수익이 생겼다. 1,100원에 판매하던 완구의 최종 소비자 가격을 50원 낮춰 1,050원에 판매해도 과거보다 더 남는다. 게다가 가격을 낮춘 탓에 매출도 덩달아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누군가는 환율로 인해 웃고, 다른 누군가는 울게 된다. 기축통화 달러의 가격에 따라 누군가는 평생을 일군 삶의 터전이 망가질 수도 있고, 반대로 누군가는 가외 수입이 생겨 남몰래 웃을 수도 있다. 이렇게 달러 가격의 변화는 우리 실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대체 왜 한평생 서울에만 살았고, 미국에는 가본 적도 없는 나의 삶에 달러가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환율의 원리
가족들과 베트남 여행을 가기 위해 베트남 화폐 동으로 환전하려고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지갑이 터질 듯한 엄청난 수량의 지폐를 은행원이 건넨다. 마치 베트남에서는 부자가 된 듯한 짜릿한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겠지만,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져서 현지에서 원화를 환전할 수 있겠지만, 분명 거절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달러로 바꿔 현지에서 환전해도 될 것이다. 물론 환전수수료를 2번이나 내는 불편함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얇아진 지갑에 안심이 된다.
당시 환율을 기준으로 원, 달러, 동은 분명 같은 가치를 지녔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고, 낮음에 따라 살짝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각 화폐가 지닌 구매력에 큰 격차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원화 만 원으로 베트남에서 TV를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구매력의 차이를 대자본을 움직이는 헤지펀드들이 그냥 두고 볼 리 없기 때문이다.
환율은 수요와 공급으로 움직이게 된다. 앞선 경우라면 고평가 된 원화를 팔고, 저평가된 베트남 동을 살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달러가 강세라 하면 달러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고, 원화가 약세라 하면 원화를 원하는 이가 적음을 의미한다. 즉,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 화폐 간의 불균형이 발생한다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통해 해소가 된다.
금의 자리를 꿰찬 달러
경제가 잘 굴러가는 상황이라면 각 화폐 간의 불균형이 발생할 시에 시장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되면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가끔은 금융위기 등으로 인한 예상을 벗어난 왜곡이 발생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해소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시장논리에 의해서만 환율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후로 금의 자리를 꿰찬 달러에서부터 모든 문제는 출발한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준의 통화정책에 따라 환율이 변하게 된다. 연준 의장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겠다는 말 한마디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좀 과장하자면 이름도 모르는 연준 의장의 한마디가 당신의 장바구니 사정을 바꿔 놓을 수 있고, 미국 경제를 위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나도 모르는 사이 세금을 거둬갈 수도 있다. 우리나라 주택정책도 다 이해가 안 되는데 연준의 통화정책까지 이해해야 하다니… 하지만 모르면 눈 뜨고 코 베이기 십상이다.
연준이 금리를 낮추고 통화를 공급하면, 달러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니 약세를 보이고, 반대로 인상하면 시차를 두고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1980년대 같이 금리를 급하게 인하했음에도 강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연준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앞서 언급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부채를 통해 성장한다. 과도한 부채로 인해 경기가 과열되면 금리를 인상하고, 이로 인해 금융위기 등이 찾아오면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 금리를 낮춘다. 돈의 속성은 경제성장률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그리고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찾아 이동한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현대의 금이자, 최고의 안전자산 달러로 돈이 몰리게 된다. 달러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 세계의 돈이 미국으로 집중되니 자연스럽게 미국의 자산시장은 활황을 보인다. 경제가 원활하게 도는 과정에서 달러의 강세는 미국에겐 축복이다.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2010년대 오랜 시간 저금리를 유지했음에도 4차 산업혁명이란 물결을 타고 미국으로 돈이 몰리면서 강달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세계 제조업의 심장이란 중국이 소비재를 싸게 미국으로 공급하면서 인플레이션은 낮게 유지되었다.
그 덕에 옛날 버릇 못 버리고 미국인들은 다시 펑펑 쓰기 시작했다. 돈이 부족하면 중국인들이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토대로 국채를 매입해 돈을 빌려줬다. 부자들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도록 가난한 자가 쌈짓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1억을 빌려줬을 때는 채권자가 갑이지만, 100억이 되면 갑을 관계가 바뀌게 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는 파산할 수 있으니, 미국이 중국의 숨통을 쥐게 된 것이다. 기축통화란 사탕은 이리도 달콤하다.
심지어 트럼프 정부에서는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제조업 부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개적으로 달러 약세를 외쳤음에도 강세를 보였다. 금리를 낮추고 돈을 더 풀라고 연준을 압박했지만 그들은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도 모자라 중국과의 갈등이 계속 부각되면서 돈은 자꾸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그 덕에 미국의 자산시장은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