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s it my turn?
Wouldn't I love, love to explore that shore up above?
(그런 날이 언제 올까? 물 밖을 누빌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Out of the sea,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바다를 벗어나 내가 저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영화 인어 공주(The Little Mermaid, 1989) 중에서
봄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지럽히면, 제 아무리 취업준비생이라도 침침한 독서실을 벗어나고 싶어 진다. 흩날리는 벚꽃 잎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동네 작은 공원이 보인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쫙 펼쳐주고, 벤치에 앉아 봄의 햇살을 눈을 감고 느껴본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어디론가 이동한다. 그 시절, 그들 목에 걸린 사원증이 그리도 부러웠다. 그리고 식사 후 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별다방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무릎 늘어난 운동복 대신 정장 바지를 입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하게 되면 초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진다. 그리고 한 3년쯤 지나게 되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행복하지 않은 자신과 마주하게 되면서, 꿈을 좇아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싶다. 그러나 다음 달 카드 값이 발목을 잡는다. 돈이라는 현실적 족쇄로 인해 동경하는 삶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더 많은 제약이 생긴다. 가슴속에 늘 품어왔던 열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두 겹, 세 겹으로 봉인해야만 한다.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다고 젊은 날의 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가족들을 위해 억누르고, 돈 때문에 잠시 미루면서 점점 희미해져 갈 뿐이다.
삶이 고단할 때, 가슴속 한편에 묻어둔 꿈을 되뇌곤 한다. 현실을 잠깐 잊을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하고, 젊은 날의 꿈을 잊지 말자는 의미도 있다.
군 복무 중에 우연히 ‘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이시다 유스케, 홍익출판사, 2005)’라는 책을 읽었다. 자전거 타고 7년 반 동안 87개국을 홀로 여행한 세계일주 여정이 담겨있다. 화장실 불빛에 의지해 아침이 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입해 단숨에 다 읽었다. 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쿵쾅거렸다.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혼났다. ‘그래, 언젠가는 도전하겠어!’라고 말해주자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언젠가는 벌써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오지 않았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쫓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러 버렸다. 어느덧 아이는 셋이 되었고, 당장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열망만을 간직한 채, 타인의 SNS를 보고 대리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인어공주 에리얼은 걷고 싶고, 뛰고 싶으며, 모래사장에서 한가로이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내는 인간의 삶을 열망한다. 게다가 잘 생긴 왕자님을 우연히 보게 된 후, 사랑에 빠져 인간 세상에 대한 동경심은 점점 커져만 간다.
마녀 우슬라는 이점을 이용해 현재로 치면 불공정 계약을 에리얼과 맺는 데 성공한다. 소녀가 원하는 다리를 주는 대신 목소리를 앗아간다. 그리고 3일 내 왕자와 키스를 통해 사랑을 확인하면,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실패한다면 아름다운 목소리를 영영 잃게 된다.
에리얼의 아버지이자, 바다왕국의 왕 트리톤은 불공정 계약으로 인한 딸의 희생을 막기 위해 우슬라를 찾아간다. 그리고 애리얼의 계약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힘의 원천 ‘삼지창’을 우슬라에게 건네고, 본인은 해초가 되어 버린다. 아버지가 되고 이 장면을 보니 오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아무리 불효자라도 이보다 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에 망정이지, 갑자기 지도자를 잃은 바다왕국은 대혼란 속으로 빠져들 뻔했다.
하지만 에리얼의 행동이 전부 철부지 같다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간절하게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를 열창한다. 마치 취준생 시절 목에 건 사원증이 간절했고, 막상 취업이 된 후에는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다니는 젊은이들이 부러운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애리얼은 삶의 제약이 적은 어린 시절 도전했기에 이룬 것은 아닐까. 사실 현실에서는 이런 막무가내 도전이 성공하기 힘들다. 하지만 젊으니까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아이가 셋이나 딸린 유부남은 과거와 달리 여건이 갖춰졌더라도 섣불리 도전할 수 없다. 이제는 현실적 제약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 말씀하셨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야.’라는 이야기 때문에 과거에는 그리도 반감을 가졌나 보다. 20대 초반에는 어머니께서 알바로 번 돈 전부 탕진하지 말고, 모아서 여행을 가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대학생 치고는 꽤 많이 벌었는데, 결국 엉뚱한 곳에 다 써버렸다. 결혼 후에 처음 비행기를 타봤으니, 그 전에는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다녀온 적이 없었다.
모든 일에 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3가지는 20대에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슴 찢어지는 사랑’, ‘지독한 실패’, 그리고 ‘유럽 배낭여행’. 분명 여행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후순위로 미뤄뒀다가 지금은 한으로 남았다. 그래서 훗날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유럽여행 다녀와!’하고 여행자금만은 꼭 전해주려 한다. 나머지 두 가지는 부모가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라 권장할 생각이다.
그리고 젊은 날 꿈꿨지만 현재는 가슴에 한구석에 잠시 넣어둔 꿈을 실현시키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꼭 보여줄 것이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열렬히 원하면 분명 이룰 수 있다는 산교육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원한다면 가끔은 무모한 도전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꼭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후회를 남기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