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dy: Hey, Buzz! You're flyin'!
(이봐, 버즈! 지금 하늘을 날고 있어!)
Buzz: This isn't flying. This is falling with my style.
(이건 나는 게 아냐. 그냥 폼나게 떨어지는 거지.)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 중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집으로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지난 5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감이 교차했지만, 마지막은 ‘참, 바보같이 일만 했구나.’라는 후회로 귀결이 되었다. 그날은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직장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날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잠시일 뿐, ‘이제 뭐 해 먹고살지?’란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둘째를 배속에 품고 있는 만삭의 아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가장이란 짐의 무게가 이리도 무거웠구나.’를 새삼 다시 한번 깨닫는 날이었다.
한때 돈을 잘 벌었다. 남들 1년 연봉을 한 달 수입으로 벌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희생한 대가였다. 그땐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쉬는 날도 없이 일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 착각했다.
이제 반대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크게 늘었지만, 수입이 크게 줄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내몰리듯 쫓겨났으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을 추스르고, 진로를 정하는데 2달의 시간이 흘러갔다.
진로를 투자자문사로 정하고 같이 일했던 2명의 친구들과 의기투합을 했다. 너무 장밋빛 미래만을 그렸는지 법인 설립 전에 여의도에 사무실부터 얻었다. 투자자문사는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되는 회사이다. 서류를 준비해 허가받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명색이 국가의 허가를 받는 회사인데 쉽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문턱이 닿도록 금융감독원을 드나들면서, 서류 미비로 퇴짜를 맞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수입은 없는데, 전재산을 회사 자본금으로 넣은 상태라 늘 돈이 쪼들렸다. 게다가 소송까지 겹치면서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아이 둘 육아까지 겹치니 원형탈모가 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하지만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하면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인가만 나면 잘 될 것이란 믿음 하나로 버텼다.
인생이란 롤러코스터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시기였다. 물론 되돌아 가라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인생에 오르막길이 있다면, 그 뒤에 늘 내리막길이 뒤따른다. 당시 이를 미리 인지했다면, 어쩌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멋지게 내려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에서 이런 명대사가 나온다. 우디가 버즈에게 “이봐, 버즈. 지금 날고 있어!” 그러자 버즈는 “이건 나는 게 아니라 멋있게 추락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다가 위의 대사를 보고, 막혔던 가슴이 갑자기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소주 한 잔을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그 시절을 이제는 기분 좋게 회상할 수 있는 추억이 된 것이다.
누구나 인생의 전성기가 한 번쯤은 온다. 이 전성기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란 착각으로 인해 오만함이 싹틀 수도 있다. 한때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란 착각을 했었다. 잘 될수록 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이 전성기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비결임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전성기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과 운까지 절묘하게 조합이 되면서 찾아오는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리 겸손해도 정점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시점이 다가온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날이 오는 것이다.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는 방법은 그 흐름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렬하게 부정할수록 내려가는 속도가 더 빨라짐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기왕 떨어지는 것이라면 버즈처럼 멋있게 추락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누구나 미래에 자신만의 전성기가 오기 때문에 어떻게 현명하게 정점에서 내려가는지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오르막이 있다면 늘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는 것만으로도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는 훌륭한 가르침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