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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ENA Oct 07. 2020

숫자로 평가되는 더러운 세상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다'라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격하게 공감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숫자]가 있다. 이 글의 제목 그대로 '숫자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숫자로 대부분이 평가되더라.'라는 것이다.  이 글에서 계속 [숫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점수, 비율, 돈, 개수, 연봉, 여러 가지가 다 포함된 숫자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임을 미리 밝힌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교육업이다 보니 어른이나 애들이나 모두 숫자로 얘기를 하게 된다. 당연히 직원 입장에서는 매출이고, 강사들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올린 점수이고, 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노력의 결과가 숫자(점수)로 평가된다. 

얼마 전에 특정 과목에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힘들어하는 한 학생에게 공부하는 방법, 위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라, 더 노력해야 한다 등등의 얘기를 하며 마지막에 내가 해준 말이 있었는데 "너희들이 지금은 점수 1~2점에 대학 합격이 결정된다는 것이 끔찍하고 억울하겠지만, 나중에 좀 더 커서 살다 보면 느끼게 될 거야. 점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그때 더 열심히 할걸' ' 1점만 더 올릴걸' 하고 말이야." ···(중략)···"나도 어릴 때는 몰랐는데 결국에는 억울하지만 그 숫자들이 나를 평가하게 된다는 걸 알았어. 생각해봐 다들 비슷비슷하게 받는 점수에서 1점 더 받은 사람이 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거야. 다들 같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100만 원 더 받는 사람이 더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거거든. 85점을 받는 사람보다는 90점을 받은 사람이 더 잘했다고 하지? 90점 받은 사람보다 97점을 받은 사람이 대학을 더 잘 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거야. 물론 네가 실수해서 1개 더 틀렸을 수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당락이 결정된다면 그 실수마저 관리해야 하는 것도 실력이야. 결국에는 살아보니 자격증 2개 있는 사람보다 4개 있는 사람이 조금은 더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는 것이더라."라는 얘기였다. 알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현실적이어서 소름 돋는다는 그 학생의 말에 지금은 숫자에 순응하며 살고 있지만 나도 숫자가 끔찍했던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사실 숫자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이 정말이지 너무너무 끔찍하게 싫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학창 시절이었다. 남들보다 몇 시간을 더 자냐 안 자느냐에 따라 열심히 하는 학생과 아닌 학생이 결정되는 것 같았고 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험 점수 1점에 따라 반등 수(숫자) 역시 갈렸다. 키가 몇 센티미터인지 그 숫자에 따라 번호가 결정되었고, 독후감을 몇 개를 더 썼는지에 따라 글쓰기 상을 받을지 안 받을지가 결정되었다. '수우미양가'로 결정되는 성적표의 글씨도 결국에는 시험 점수에 따라 결정되었고, 전교 등수도 반 석차도 모두 숫자에 의해 결정되었다. 결국은 내가 만든 숫자인데 그 속에 노력과 상황과 열정 그리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해서 그 숫자가 들쭉날쭉할 수도 있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조차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속상했고 억울했다.


세상에 이러한 끔찍한 세상은 대학에 합격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과 정원이 몇 명인 곳에 들어갔는지를 비율로 분석해서 합격률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는 1~2점으로 소수점이 아닌 숫자가 나 자신이 평가되는 기준이었는데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오니 소수점에 의해 나는 A, B, C, 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소수점 때문에 알파벳 위에 플러스 가 붙느냐 마이너스가 붙느냐가 결정되는 것은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소수점 둘째 짜리까지 내 노력으로 결정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취업을 위해서 자격증 시험을 봤을 때도, 과대를 하기 위한 투표에서도 내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항상 숫자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게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모든 것이 다 공평할 수는 없는 거구나, 경쟁이란 이런 것 이구 나라고 숫자의 힘에 순응하게 된 계기는 회사에 들어가서 연봉이라는 8자리 이상의 숫자 자리가 왔다 갔다 거리는 것을 경험하고 난 후였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그동안 쌓아왔던 숫자들의 결과와 관계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숫자 네가 정답이었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연봉을 받고 성과급을 받았고, 승진을 했고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더라는 것이다. 


처음 뒤통수 맞았을 때가 생각난다. 250:1의 경쟁률을 뚫고 프로모션 회사에 입사를 하고 3개월 수습 기간을 마쳤을 때 회사에서는 정직원이 된 나를 포함한 10명의 공채 합격자에게 선후배와의 자리를 기념으로 만들어줬다. 내가 입사하기 바로 전 기수들의 선배와의 자리였는데 한참을 얘기하다가 어느 회사에서나 선배들이 하는 얘기 '열심히 하면 2년쯤 후에는 성과대로 연봉을 받게 될 거야'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들려온 얘기는 충격이었다. 입사 시기와 관계없이 (물론 직급의 상한선은 있었다. 연봉 하극상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기획을 잘하고 열심히 하면 OO 선배처럼 얼마의 연봉을 받을 수 있고, 몇 개의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는지에 따라 성과급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땐 그 선배가 그렇게 수려한 외모도 아니었고, 학벌도 그 팀에서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여기까지는 본인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입찰하는 프로젝트에서 번번이 높은 점수를 받았고, 프로젝트를 따냈으며 그 선배가 따낸 프로젝트로 회사 매출의 몇%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성과급이 사내 몇 순위이고 결과적으로 선배의 연봉은 얼마이다 로 결론지어졌다. 결과적으로는 학벌, 집안, 성품, 인성보다 회사에 숫자로 기여하는 바가 그 선배의 몸값이었고 몸값(연봉)을 듣고 나니 갑자기 말도 몇 번 안 해본 그 선배가 엄청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끔찍하게 여겼던 숫자의 신비랄까(?) 믿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 후에 내가 말하는 모든 숫자에 나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에 아는 언니가 집을 샀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축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는데 평수는 몇 평이고 그로 다른 곳과는 다르게 몇 개의 버스 노선이 교차하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수입이 얼마인지 등등을 말하면서 1~2평 차이 나는데 더 큰 평수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더 줘야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집을 가진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드라마틱 한 예를 들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무 내 생각이 돈돈돈에 꽂혀 있는 듯 편협하다는 생각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하실 수도 있다. 한데 그냥 단순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숫자를 쫓는 계산적인 사람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 손해를 더 많이 보기도 한다. 


9월 교육업계는 끔찍했다. 정부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줄줄이 수업을 없애야 했고, 학원에 학생들 숫자가 줄어들면서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단 한 번도 매출에서 밀린 적이 없었고 항상 목표했던 예상 목표 매출보다 120%는 더 달성했던 나였기 때문에 9월 매출 부진은 사내 그룹 내에서 "나의 건강 이상설"을 끄집어냈던 것 같다. 그러면서 10월이 되고 연휴가 지나고 출근한 월요일 "다시 네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라고 말하며 매출 때문에 부서의 입지와 소문 그리고 부서장님의 자리 위태함을 장황하게 설명하셨다. '나 하나로? 지금 코로나에 다들 어려운데...'라고 억울함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왠지 숫자라는 것이 행운을 가져다주고(7) 죽음을 가져다주고(4) 사랑을 표현하고(486).. 이런 의미가 왠지 끔찍하게 다가오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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