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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ENA Oct 06. 2020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기

세상이 조금 더 온화해지는 방법 아닐까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들과 투닥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마 남자애들과 말싸움이 붙어서였던 거 같은데 순간 놀이터 옆 공터에서 아빠를 발견하고는 뛰어가서 뭐라 뭐라 일렀던 것 같다. 아마도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이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 기억에는 아빠가 내가 누군가를 이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셨던 것 같다. 그게 뭐 딱히 인생을 바꿔놓은 무슨 상처 있는 일이다 이런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에 대한 일부일 뿐이다. 

사실 이 기억이 매 순간 나를 괴롭히던 것은 아닌데 내가 어느 시점에 이 어렴풋한 기억을 끄집어내었던 계기가 있었다. 20대 중 후반 즈음의 성인이 되었을 때 일이었는데, 그날도 뭔가 억울한 것이 있어서 열변을 토해내며 엄마, 아빠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나의 말에 항상 즉각적인 리액션으로 대응해 주는 엄마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내 마음을 위로받고 있던 찰나에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네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 니 행동이 상대방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라고 말이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엄마와는 다른 리액션에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 그런가?' 하고 자기반성의 시간을 잠시 갖게 했다. 


항상 어떤 일에 대해서 대화를 시작하면 나의 아빠는 항상 그 사건 혹은 그 일, 현상 등의 대화 주제에 맞는 내가 모르는 배경지식을 설명해 주시거나, 역사나 히스토리 등을 설명해 주시곤 했는데 이는 내가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보다 폭넓은 배경지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셨고, 조금 더 사고하는 방식에 이해와 깊이를 더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평소에도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대화를 할 때에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더 솔직히 말하자면 마치 내가 남인 듯 제삼자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곤 하셨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그게 너무 서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날 방으로 들어와서 이 글의 초반에 얘기했던 아주 어릴 적 희미한 기억 속의 사건까지 기억해 내며 한동안 서운함을 곱씹어야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는 나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 억울했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딸 오늘도 힘내.'라고 말이다. 굳이 새벽 6시 전 동이 트기도 전에 출근하는 딸이 밤새 마음이 상했을 까 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나가는 나의 마음을 토닥여 주신 것이다.   - 내 인생의 한 컷 중 -


그때 깨달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딸의 기분과, 잘못은 도덕적으로 비난받거나 혹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부모로서 얼마든지 감싸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도 하지만, 너무 이기적이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던 아빠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물론 얼마 전에 이런 얘기를 했을 때 아빠는 '넌 또 그걸 그렇게 심오하게 해석했던 거야?'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해 낸 나만의 자기 치유법(?) 또는 나만의 자기 긍정 화법(?) 일 수도 있겠지만 이날 이후로 가뜩이나 생각이 많던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이 될 때, 억울할 때, 누군가로 인해서 화가 날 때 욱하는 마음을 쳐들기보다는 한걸음 더 물러나서 '왜 이렇게 되었지?' '내가 실수한 건 뭐지' '내가 저 사람 입장이면 내 행동은 정당했나?' 뭐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데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다. 물론 덕분에 화를 내야 할 때를 놓치기도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억울한 게 맞는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이야기를 꺼내면 다 지난 얘기를 왜 이렇게 생뚱맞은 시점에 하느냐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항상 이런 것은 아니다. 욱하고 화가 먼저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마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 중 대부 분은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또 상당 부분 많은 사람들은 '뭐 저렇게까지 생각을 해 피곤하게'라고 반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후부터 내가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물론 이것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나 스스로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를 거의 안내는 성격이지만 종종 흥분하는 일이 많던 버릇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다.  다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 생기는 일들 중에는 손해 보는 일이 종종 생긴다는 점인데 그것도 뭐 살다 보니 내가 편하니 그도 그만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에 [층간 소음은 이웃에 대한 배려]  [이해하면 쉬워지는 것들 1/2]라는 글도 상대의 입장에서  그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말을 들은 시민이 종종 마스크 쓰기를 권유한 사람을 폭행하는 기사가 한창 떠들썩하게 뉴스를 장식한지도 한참이 지났고 수도권 지역에서는 마스크 쓰기 의무화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에 뉴스에서 또 마스크 착용을 권유한 버스기사님을 폭행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안타까웠다. 내가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이지만 지금은 불편을 따실 상황은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내가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남을 배려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가 이 글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하는 것도 절대 아니다. 하지만 뭐든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혼자 살 수 없는 이 세상이 조금 더 온화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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