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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씨 Dec 01. 2021

<애인보다 동거녀가 먼저 생겼습니다> _01

10년지기 친구와의 그럭저럭한 동거생활


뜻밖의 변화구 : 우리 둘이 같이 사는거야? 정말로?


독립을 하려면 30대 초반 즈음이라 생각했던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학교가 멀어 자취를 고민하던 친구와 여러 번 얘기해오긴 했지만 정말로 해보자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채로?내가 지레 겁을 먹고 망설이는 사이 친구와 선배들은 나보다 열 걸음 먼저 나가 있었다. 공인중개사에 연락해 매물을 확인하고, 짐을 싸고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하는 것까지. 내가 발만 동동거리고 있을 때 주변에서는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내 자취를 준비해주었다.


급히 독립을 하기까지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여기서 다룰만큼 유쾌하지 않은 내용이기에 다루지 않겠다. 다만 평생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큰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지금, 10년지기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다.


선배가 그려준 우리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토끼를 사랑하는 예비 대학원생 은과 한 손에도 쥐어터지는 유리멘탈 작가 지망생 민. 언뜻 보기 닮은 구석이 많은 우리지만 정반대인 구석도 그만큼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작년에 장난으로 본 사주에서 사실 정반대의 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은의 성질은 불, 나는 물로 둘이 완전히 상극이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둘이 만나면 중화가 되면서 합이 잘 맞는다는 설명이 덧붙었지만 말이다.


 또 사소한 것을 엄청나게 신경쓰는 나와 달리 은은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가거나 한번 화를 내고 만다.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척 넘어가도 뒤에서는 칼을 가는 나와는 다르다. 또 이과와 문과, E와 I라는 차이점에서 오는 간극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우리가 닮은 부분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두 사람 모두 얼레벌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일상에 익숙하다는 사실. 특히나 나는 살림이나 생활상식이 심각할 정도로 없는 편인데, 은도 웬만한 실수는 무던히 넘어가주고 또 가끔은 본인이 덤벙대기도 한다.


자취 한달째. 당연하지만 우리는 해결해야 할 일에 허덕대고 가끔은 의견이 어긋날 때도 있다. 거기에는 나의 예민한 성질머리도 한 몫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이상 무다. 머지 않은 시일 내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만 하는 수 없다. 우리는 보증금으로 결속한 사이기 때문에 싫어도 부딪히는 수밖에! 이 때문에 우리는 종종 서로를 전생에 쌓은 업보라고 부른다.


 애인보다 동거녀가 먼저 생겼다는 말


자취 첫 날 나는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친구에게 얘기했다. 우리 둘이 살면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을 누가 재밌어할까?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번 기록해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 때 친구가 애인보다 동거녀가 먼저 생겼다는 농담을 했는데, 이보다 기막힌 제목이 없다고 생각했다. 덜떨어진 기사 헤드라인 같다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한참을 재밌어하다 지식인이라면 내공 백점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답변을 채택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은도 서로의 농담을 유난히 웃겨하느라 죽이 잘 맞는것 같다. 또 시도때도 없이 상황극을 하는 습관이 어느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졌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 동거녀로 말할 것 같으면, 쓴 소리를 잘 하지 않고 집에 얼굴 비추는 날이 드물며, 거기다 개그코드까지 잘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남편감으로도 이만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 


취를 시작하고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처음 독립을 한다고 했을때 주변 어른들은 내가 무모하고 철이 덜 들었다고 했다. 그런 걱정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겠다.


그러나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 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전보다 훨씬 안정되었다. 취준 기간 동안 나를 좀먹던 불안함은 한결 가라 앉았고, 전에 없던 책임감이 생겼다. 내가 나를 먹여살리지 않으면 정말로 살 수가 없는 상황이 닥쳐버렸기 때문이다.


매달 빠져나갈 비용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그렇다고 자취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모든 모험에는 비용이 따른다. 일년 정도 돌아간다고 한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 손해만은 아니겠지.


은과 나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최대한 잘 해주고 싶지만 나 하나 챙기기도 벅찬걸! 그건 은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자기가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하는 남편 같다느니, 모처럼의 휴일에는 잠만 잔다느니 하며 걱정을 늘어놓기 일쑤다. 반대로 나는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 몇 개를 빼먹는다, 힘 쓰는건 다 너한테 맡긴다고 대꾸한다. 


 대학생 둘이서 서로 결혼 2년차 부부같은 소리를 해댄다는게 웃기고 언제까지 이럴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의 다사다난할 동거는 시작되었다. 


은에게 싸준 도시락. 요즘은 귀찮아서 안 싸준다. 벌써 초심이 온데간데 없다.

앞으로는 우리의 얼레벌레한 일상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해보고 싶다. 독립한, 혹은 독립하려는 딸들에게 미약한 도움이나마 되면 좋겠지만 우리도 동거는 처음이라서 어떨지 모르겠다. 아무튼, 어쩌다보니 애인보다 동거녀가 먼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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