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 황석영
할매 - 황석영
군산의 하제마을에 실존하는 팽나무, 병인박해, 전란 그리고 후세에 이르러 발생한 미국령이라 불러도 이상한 비행장에 대한 민중의 의식을 소재로 한 픽션. 그러나 개연성의 수준은 거의 논픽션에 가깝다.
수령 640년의 팽나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금강 하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사체에서 나온 씨앗이 뿌리를 내리며 640여 년의 역사에 대한 전개가 단 한 꼭지도 흐트러짐 없다. 플룻은 가볍고 담백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초반부는 자연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황석영 선생님만의 필력에 감동.
읽어 내려가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온 역사의 시간. 원터골로 올라 매/석기/이수/국사봉을 내질러 다녀오는 청계산 운주동 하산의 말미. 마음이 순간 경건히 내려앉는 곳 역시 작품에서 드러난 슬픔의 사실.
단 나흘 만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지만 눈과 마음을 거쳐 역사를 관통한 과정. 이 역시도 어쩌면 내겐 인연이었으리라. 걷고 또 긴 호흡으로 가는 종주의 길이지만 모든 이들에게 공유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어쩌면 이 작품에서 작가가 모두 그려내 주어 고마움에 한 줄, 한 단락도 놓치지 않으려 애써보았던 명작이라 추천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내밀한 표현 하나하나를 관조적으로 담았던 4년 여의 시간과 노력에 감사하며, 인상 깊어 기억하고 싶었던 표현들.
언제 군산에 도착하면 반드시 찾아가 보리라...
서리가 내리면서 나무는 가지와 잎으로 보내던 물을 회수하고 뿌리에서 위로 오르는 수관을 닫았다. 수분이 끊긴 잎은 푸른색에서 노랑이나 갈색이나 빨간색으로 변하면서 바싹 말라서 가지에 흔적만 남기고 지상으로 떨어져 뿌리를 덮었다.
밭의 작물이란 농사꾼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대로 두엄을 푸짐하게 뿌려 기름진 땅의 흙을 푸슬푸슬하게 일구어 씨를 뿌리고 고랑을 내고 잡초를 뽑아주고 했더니 놀랄 만큼 배추와 무와 상추, 쑥갓, 오이, 호박등의 푸성귀가 잘 자라났다.
생물이 살 수 없는 갯벌을 주민들은 '죽뻘'이라 불렀다. 갯벌을 잃은 연안의 수만 명 어촌 사람들은 약간의 보상금만 받고 고향을 떠나 도시 빈민이 되어갔다.
생사는 물론 세상만사는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벽은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큰 바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