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호, 「서울에서 남쪽으로 여덟 시간 오 분」
어떤 시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대체로 언제일까. 다양한 경우가 있겠지만, 강렬한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사랑에 빠진다. 이 시에서는 바로 다음의 문장을 만난 순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 세상에 사랑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이제 알았지?
베드로도 사랑했어 예수를
이 시는 자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자매에게 ‘삶은 지옥이고 평화는 초현실’적이다. 분명 같은 부모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왔을 텐데, 두 사람은 남반구와 북반구처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적도에서는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끝나는 치킨 게임이 벌어진다.
적도는 아마도 가족이며 집일 것이다. 조금 더 추상적으로 넓히면 혈연이라는 복잡미묘한 것이다. 남반구와 북반구는 서로를 가르는 적도를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적도 위에 있을 뿐이다. 지구를 벗어나는 게 아니라면. 그래서 자매는 서로를 상처 입힌다. 다리를 자르고, 폭탄을 터뜨린다. 그 싸움은 마치 코카인에 중독된 것처럼 반복적으로 행해진다.
언니 잘 들어 우린 중독된 거야
우리는
없는 명분을 만들어 서로의 귓구녕에 대고
쏘았다 갈겼다 바쁘니까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드디어 저녁 먹고 땡”
그러나 자매는 서로에게만 상처를 입히는 건 아니다. 당연하게도 자기 자신도 자매를 이루는 일부다. 자매는 스스로에게 상처 입힌 자해의 흔적을 보여준다.
너는 말년 병장이구나 나는 고작 이등병인데
별을 보려면 얼마나 많은 밤을 치고
받아야 하는 걸까?
자해의 흔적은 종종 군인들의 계급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착안된 이등병, 병장에서 이어지는 이미지는 장성, 장군을 뜻하는 별이 된다. 미수에 그친 자해들이 병사라면, 아마도 완수된 자해가 장군이 아닐까. 두 사람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싸워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의 말미에 이르게 되면, 서로를 죽이고 싶었던 행위들은 사실은 살고 싶었던 몸부림으로 전환된다.
그러니까 다시는 살아나지 말자 다시는 깨어나지 말자 다시는 눈 뜨지 말자 다시는 빤스도 흔들지 말자 다시는 투항도 포기도 하지 말자 쫄지 말자 울지 말자 잡지도 잡히지도 말자 다시는 다시는 살아서 보지 말자 누구든 쓰러져 죽으면
그게 이기는 거야
치킨게임의 룰은 전환되었다. 서로를 죽이고 살아남는 게 승리의 조건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서 상대방보다 오래 살아남는 게 승리의 조건이다. 새로운 게임의 룰에서 우월전략은 어떻게 되는가.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 서로 다시는 보지 못하더라도 상대방보다 오래 사는 것. 그게 이기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이뤄내는 것은 서두에 소개한 부분이다.
유대 장로들에 의하여 예수가 잡혀가던 날, 예수의 애제자이자 수제자라고 불렸던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 세 번째 부인하던 순간, 아침 닭이 울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베드로는 그럴 리 없다고, 누군가 선생님을 잡으러 온다면 칼을 뽑아서라도 지키겠다고 했으나 베드로는 어쩔 수 없는 예수의 수제자였던지라 선생의 말을 지켰다.
이 이야기의 뒷부분을 나는 더 사랑한다. 베드로가 예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는 베드로에게 묻는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그렇다고 답한다. 연거푸 세 번을 물으며, 예수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명한다. 세 번 자신을 부인한 제자에게 왜 그랬느냐고, 어째서 그랬느냐고,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느냐고 세 번 묻는 게 아니라,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어주는 것. 나는 이보다 완벽한 용서의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이 시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은 늘 서로에게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한 구석이다. 동시에 서로에게 가장 멀면서도 지옥 같은 구석이기도 하다. 남반구와 북반구가 붙어 있지만, 서로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적도처럼. 우리는 서로를 가르는 적도에서 만나 가족이 된다. 벗어나고 싶어도 남반구는 남반구로만, 북반구는 북반구로만 갈 수 있다. 자기 자신 외에는 적도 뿐이다. 가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끊임없이 서로를 원망하고 다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가족이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이 가족인지 말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