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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ter flush Jan 17. 2024

청수사를 오르며..

네 번째 교토


교토에 처음 간 것은 95년 11월의 일이다.

약혼식을 하고 시아버님의 오랜 지인이신 무라다 아저씨의 초대로 예비 시댁 식구들과 함께 약혼 여행을 가게 되었다.

말이 약혼 여행이지, 예비 시댁 식구와의 가족여행이라 부르는 게 맞겠다.

아무튼 난 그때 처음 일본에 가게 되었고, 무라다 아저씨의 세심한 배려로 훌륭한 여행 일정을 보내게 되었는데 오래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고베의 료칸에서 유카타를 입고 가이세키 요리를 먹으며 황송한 대접(직원분들이 기모노를 입고 무릎으로 기어서 서비스하는 모습에 황송하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을 받았던 이십 대의 내가 받은 신선한 충격이란..

그때 갔던 곳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교토의 청수사다. '물이 맑은 절'이라는 뜻의 청수사.



니넨자카, 산넨자카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붉은 기둥의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입구가 화려하게 마주한다. 당시 사람들이 꽤 붐볐는데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수학여행을 온 것인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군데군데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으며 청수사로 향했던 기억이 엊그제 마냥 생생하다. 밀집한 상점에서 무라다 아저씨가 얇은 찰떡을 사 주셨는데 얇고 네모난 종잇장 같던 찰떡이 어찌나 맛있던지 주시는 걸 마다않고 하나씩 받아먹으며 걷던 일도 잊을 수 없는 맛의 추억이다.

그 후 딸내미 초등학교 때 함께 오고, 남편과는 두 번 더 이곳을 찾았다. 그러니까 이번이 네 번째 교토다. 올 때마다 사찰의 보수 공사로 부분 부분 출입이 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겨울이라 그런지 다행히도 생각보다  많이 북적이지 않았다.



니넨자카 거리의 상점들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 같고, 거리의 사람들만 바뀌었을 뿐 이곳은 시간의 흔적 없이 고요하다. 얼마 전 태국 여행길에 들른 사원 앞에서 만난 90대의 커플(한국 분이셨다)이 문득 떠올라 남편에게 우리 90이 되어 이곳에 또 오자고 하니 그전에도 오고 또 그때도 오자고 한다.  세상에.. 90까지 건강하게 여행을 다니려면 몸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약혼 여행 당시 젊고 건강하셨던 시부모님은 이제 더는 여행을 가지 못하실 정도로 몸이 약해지셨다. 95년의 겨울이 엊그제같이 생생한데, 청수사의 위엄은 변함없이 꿋꿋한데 사람의 몸은 세월에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득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와 오래된 앨범을 뒤적여 보았다. 그때의 시아버님은 청년처럼 젊다.(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 살이 적은 나이셨네!) 늘 호쾌한 입담을 자랑하시며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현지인 같은 실력의 일본어로 젊은 우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셨는데 이젠 누군가의 부축이 없으면 걷는 데에도 불편을 겪으시니 삶의 야속함을 어디에 물을까? 시부모님은 우리 부부의 이번 여행을 반기시며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기며 부모님 몫까지 다 놀고 오라 하셨다.

피터팬처럼 영원히 젊은 오빠처럼 늙지 않을 것만 같던 아버님의 노쇠한 모습은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이번 교토의 청수사는 많은 기억을 회상하게 했다. 과거의 시간을 걷다 온 기분이다

시부모님의 건강을 염원하게 만들었고,

인간의 짧은 역사를 돌아보게 만들었으며,

내게 남겨진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묻게 만든 시간이었다.


다음의 청수사를 기약하며 삶을 아름답게 다듬어 가자고 내 안의 내게 기도하듯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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