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사회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까를 알려면 SF소설을 읽으라고 어느 작가가 이야기했다. 전혀 관심 없던 영역인 SF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으면서부터다. 과학도였던 젊은 작가의 글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늘 혼자 읽는 독서 편식자였다면 이러한 새로운 영역으로의 접근은 여전히 어려웠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과 또 여러 방면의 관심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책모임을 주최하면서 책을 다양하게 고르게 되었고, 이로써 읽는 책의 범위가 한결 넓어졌다. '천 개의 파랑'도 그런 관점으로 집어든 책이었고,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이 소설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책이고, 어떤 내용이기에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가 궁금했는데, 우선 제목과 표지부터 눈에 띄었다. 맑은 날의 바다색처럼 파란 표지에 분홍, 보라, 자주, 청록, 노랑등 색색의 구름이 펼쳐진 하늘, 저 하늘은 누가 올려다본 것이고 천 개의 파랑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상상의 힘에 이끌리게 된다.
C-27이라 불리던 콜리는 휴머노이드 기수다. 콜리는 경마에 사용될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만들어졌지만 한 연구생의 실수로 인지와 학습능력 칩이 잘못 끼워져 탄생하게 되었다. 콜리와 경기를 함께 펼쳐갈 말은 투데이라는 갈기가 멋진 흑마다. 이 둘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말을 빨리 달리게 하는 것에 집중한 다른 기수들과 달리 콜리는 만지고 의문을 갖고 교감할 줄 아는 능력으로 투데이를 행복하게 달릴 수 있게 만들었고, 그 호흡으로 늘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주로를 힘껏 달리며 느끼는 투데이의 자유와 행복은 기수 콜리에게 그대로 전해졌으며 그렇게 전해지는 정보는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결국 경기를 하는 데 있어 이런 필요이상의 자극은 콜리의 실수로 이어지고, 둘의 운명은 세상의 관심 밖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이어 등장하는 주인공 연재와 그의 가족들, 엄마 보경과 언니 은혜,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어울림은 콜리와 투데이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 나갈 것인가. 그 과정이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지고,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와 행복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천선란작가의 필명은 본인의 엄마, 아빠, 언니의 이름에서 한 자씩 조합해 만들었다고 한다. 어릴 땐 만화광이었다는 작가는 이야기를 상상해서 만드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는데 인문계열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원치 않는 과목의 공부로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모님의 허락 없이 안양예고 편입시험을 봤고 두 명의 합격자 중 붙게 되어 부모님을 설득해 다니게 되었단다. 이번에 출품할 작품으로 원래는 '지도에 없는 행성'이라는 작품을 쓰고 있었지만 완성 단계에서 결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면서, 자신에게도 울림이 없는 글이 누구에게 울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주저 없이 마음을 접고 마감 3주를 앞둔 시점에서 새로이 '천 개의 파랑'을 쓰기 시작해 단시간에 완성해 출품하게 되었단다. 단 3주 만에 하나의 장편 소설을 완성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온 걸까? 자신의 이야기 속 세상에서 한 틈도 빠져나오지 않고 그 시간을 보냈을 작가의 몰입의 순간을 상상해 보니 이 작가의 잠재력과 숨어있는 거대한 이야기 세상이 궁금해졌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도 하고 때로는 불평도 하면서 어울려 살아가지만 각자의 기준은 너무도 달라 행복의 조건 안에서도 기필코 불행을 끄집어내 자기 삶을 부정적으로 끌고 가는 이들을 종종 본다. 가린 눈에 남는 건 어리석음이지만 깨닫지 못하면 알려줄 길이 없다. 반대로 불행의 조건 속에서도 기필코 행복을 찾아내는 긍정의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곁에 둘 이들은 바로 이런 이들이다. 소설 속 연재의 가족은 후자에 가깝다. 소방관이었던 아빠의 죽음과 엄마의 좌절된 젊은 날의 꿈, 은혜의 걷지 못하는 두 다리와 연재의 희망 없는 능력등. 열거해 보자면 행복할 순간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 속에서 이들은 행복을 짓고 희망을 본다. 작가의 시선에서 나온 다정한 문장 속에서 우린 그 행복의 조각들을 찾아 내 삶의 연료로 삼아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