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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단상

지인의 방문

by winter flush

지난주 오랜 지인의 방문이 있었다. 프랑스에 살 때 친하게 지낸 사이인데 몇 해 전 어떤 계기로 마음에 거리가 생겨 이렇게 인연이 멀어지는가 보다 하던 참이었다. 이쪽에서 그렇게 느끼면 저쪽에서도 그렇게 느껴지는 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법칙이라 이제 더는 만나기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안타까운 마음의 흔적도 희미해질 즈음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간이 허락되는 날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지만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기에 난감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유연성이 부족한 내 모습을 마주하며 언젠가 함 보자고 짧은 답변을 보냈지만 지인은 좀 더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였고, 그렇게 우린 만났다.

처음 그녀를 만난 건 이십 대 중반. 그러니까 90년대 후반이다. 결혼 후 바로 건너간 그곳에서 우리처럼 신혼있었던 그녀를 만나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프랑스에서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7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우리와 달리 지인네 식구는 프랑스, 독일, 인도 등을 거쳐 긴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야 했기에 우린 자주 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볼 기회(그녀가 한국에 들어올 때면)를 얻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보따리를 푸느라 정신이 없었고, 늘 주어진 시간의 야속함에 불만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한국에 온 그녀의 달라진 모습은 내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었다. 생각이 깊고 웃음 많던 그녀가 몹시 부정적으로 변한 것이다. 억울함과 불만의 수위가 점점 높아갔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사람들이 가해자인양 계속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듯 느껴졌다. 행복한 삶의 에피소드도 모두 잿빛 기억으로 쇠락시키고 내 손에 없는 것들만이 좋게 반짝이듯 자기 연민에 휩싸여 스스로를 불행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자기 불행의 주체를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이 내게 가장 거슬린 점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물레방아처럼 돌고 돌고 계속되니 공감하고 들어주던 귀도 더는 수용할 수 없다고 신호를 보냈다. 자신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이기적이라 여겨지는 부분에선 슬슬 화도 올라왔다. 여태껏 알고 지낸 그분이 맞나 싶었다. 긴 외국 생활의 지친 삶이 저리도 마음을 건조하게 만들었을까 싶어 달래기도 꾸짖기도 해 가며 그녀에게 가혹했을지 모를 시간을 함께 통과했다. 나는 실망을, 그녀는 충격을 받았을지 모를 그 시간의 터널은 데면데면하고 어색한 기류를 만들며 또다시 그렇게 흘렀다.

그녀와 약속 시간을 잡고 만날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걱정도 점점 차올랐다.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내가 문제였는데 애써 웃으며 그녀를 편하게 대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내가 상처를 줄까 봐 건넨 말에 걸려 넘어질까 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의 만남을 피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일상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던 나 자신이 하나의 이유였고, 예전처럼 다시 부정적인 말의 반복이 이어지면 어쩌나 하는 이유가 나머지 하나였다. 그러나 모든 게 나의 기우였다. 못 보고 지낸 사이, 그녀는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해서 해왔고, 결국 그 당시 자신의 오류를 보게 되었으며, 그 고백의 말을 차근차근 내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의 핵심을 스스로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시간이 부끄럽다고..

잃었던 친구를 찾은 기쁨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참으려 했지만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의 추억들이 빛처럼 스쳐 예상치 못한 마음이 되었고 그렇게 우린 서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지인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고선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그 말을 하기 위해 내가 피한다는 걸 알면서도 밀어붙이듯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순간 나의 좁은 마음자리가 부끄러워졌다.

예전의 마음이 되어 마주 본 그녀는 힘든 시간을 잘 헤치고 돌아 돌아 처음 만났던 이십 대 후반의 그 밝고 예쁘고 멋진 자기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최근에 내게 가장 기쁜 순간이다.


사람의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변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자지 자신'을 제대로 만나기 시작하면 변한다.

자기를 돌아볼 줄 알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으면 조금씩 성장한다.

그래서 그 누구라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긴 터널을 지나 밝은 햇살로 나올 용기는 기다림의 마음이 있다는 안도 속에서 품을 수 있는 마음일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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