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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독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읽다가 문득..

by winter flush

앨프리드 더글러스. 그리스 조각상처럼 빛나는 외모로 오스카 와일드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청년이다. 이 살아 움직이는 조각상은 오스카의 유일한 장편 소설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나오는 도리언과도 닮아 있으며, 그들의 첫 만남 역시 소설 속 스토리와 유사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 오스카에게 은밀히 다가온 이 청년. 운명처럼 스며들 그의 존재를 예언하듯 출간된 이 소설이 그의 운명을 나락으로 떨어 트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을 무려 아홉 번이나 읽고 작가를 만나러 왔다는 완벽한 외모의 이 청년은 그러나 작은 악마였다. 오스카는 그를 거부할 수 없었고, 이 청년은 자신의 욕구를 거침없이 펼치며 오스카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 그의 삶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갔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나 보편적 현상일 동성애가 당시 영국에선 불법이었으며, 그와 그의 가족의 무리한 요구는 결국 그를 재판으로 몰아세우게 되었고, 투옥이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 작은 악마를 수없이 떨쳐 내려했지만 의지로 되지 않았던 그 이유를 오스카 자신에게서 찾는다. 당시 오스카 와일드의 명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문장에서 풍기는 미적 아름다움은 당대 작가들의 부러움을 한껏 샀을 뿐 아니라 그는 자신이 글로서 예술을 하는 사람인 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유미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오스카 와일드. 그의 신념과 사상이, 그리고 아름다움을 향한 욕구가 한순간의 착오로 방향을 틀게 되고 그의 삶 전체를 집어삼키고 말았으니, 분별의 눈을 흐리는 감정의 불씨가 삶 전체를 화마로 뒤덮었다는 사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인생의 정점에서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한 그의 삶을 읽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관계의 독을 분별하지 못하면 공들여 가꾼 인생이 한순간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영부인이 나란히 구속되고 그와 엮인 인연들도 하나둘 구속되는 모습을 보며 분별할 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상기하게 되고, 또한 그 끝의 추레함이 어떤 것인지를 명백하게 본다.

분별의 힘은 '양심'에서 나온다. 양심의 축이 기울어 있거나 그 자리에 먼지가 끼어 흐릿해 있다면 빛나도록 닦아 투명하게 유지해야 할 것이다. 투명한 양심은 음지를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이 되는 연에 닿아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면 지체 말고 그 관계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런 인연은 달콤하게 다가와 조금씩 내 삶에 균열을 만들기 때문이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 오고 가는 때가 있다는 것인데, 오는 인연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인연을 받아들이고 마는 것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다. 좋은 인연이라면 감사한 마음으로, 악연이라면 스치고 지날 수 있게 내 안의 지혜를 끌어 모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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