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어린 시절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날을 떠올려보면 어린이날, 생일, 그리고 크리스마스다. 평소 갖고 싶었던 무언가를 선물로 받고, 하루동안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기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던 특별한 날들로 기억된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이 되면 엄마는 거실에 트리를 꺼내시고, 나는 매일 조금씩 원하는 형태로 트리 장식을 바꾸며 추운 겨울을 즐기며 보낸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고, 거리엔 캐럴이 울려 퍼지고, 식구들과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던 겨울 풍경. 그러나 이 모든 즐거움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이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12.25이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싶었던 4세기경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교황 율리오 1세는 성모마리아의 수태가 3월인 것을 토대로 당시 로마의 큰 축제였던 사트루날리아 축제 즈음에 맞춰 12.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했다. 로마의 농신제로도 불렸던 사투르날리아 축제는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이 기간엔 주인과 노예의 역할이 바뀐 역할놀이를 하며 한 해 동안 거둬들인 풍성한 먹거리로 잔치를 벌이면서 일주일 가량 먹고 마시는 축제를 즐겼는데 그 즐거운 분위기에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한 황제의 통찰이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된 것이다. 이후 종교적 의미로서의 크리스마스 전통은 꾸준히 유지되었지만 올리버 크롬웰이 찰스 1세를 단두대에 올리고 공화정 체제를 갖춘 영국에선 몇 년간 크리스마스가 법적으로 금지되었고(그의 죽음 이후 다시 크리스마스가 부활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전통도 쇠락해 갔다. 1840년대를 영국에선 the hungry 40's, 즉 배고픈 40년대로 부른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은 어려웠다. 막대한 부를 이룬 이들과 가난한 이들의 삶의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벌어졌으며, 공리주의와 자유 방임주의를 무기로 자본가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게 된다. 그 틈에서 희생되는 계층은 노동자와 어린이였는데, 노동법이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 노동계층의 어린이들은 기계를 조작하고 굴뚝 청소등을 하며 작은 몸이 유리한 영역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삶을 이르면 4,5세부터 시작해야 했다. 찰스 디킨스 역시 가난한 어린이 노동자로서 채무자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대신해 열악한 환경의 구두약 공장에서부터 험한 삶을 겪게 된다. 그러나 밑바닥 삶에서 배운 경험은 그에게 글이 되어 빛나는 작품들로 완성되었으며, 셰익스피어에 견줄만한 전무후무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특히 그가 6주 만에 완성했다는 이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현재 우리가 즐기는 훈훈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어냈다. 이 책의 출간 전과 후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작품에서 묘사되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찰스 디킨스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집 앞에서 캐럴송을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 가족과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모습,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 이 작품으로 인해 유행하게 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유산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종교적 의미에 더해 가족 중심의 축제일로, 소외된 계층을 보살피는 마음과 모두에게 훈훈함을 나누는 크리스마스로 재탄생시키는 공을 세운 것이다.
어딜 가나 냉기를 뿌리고 다니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외톨이 스크루지가 전 동업자였던 말리의 유령을 꿈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개과천선 하는 스토리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지만 이 소설을 직접 읽어봐야 할 이유는 너무도 많다. 크리스마스 아침 시내 풍경의 묘사라든지, 가난한 직원 밥 크래칫 가족의 식탁을 묘사한 장면들은 당장 거위를 굽고 감자를 으깨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장식하고 싶은 내 안의 열정을 일깨운다. 또한 작가는 당시 부조리했던 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며, 가진 자들의 '무지'가 어떤 '결핍'을 초래하는지 경고하는 섬뜩한 문장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덕목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책이 출간된 1843년 이후 크리스마스 풍경은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가족끼리 모여 만찬을 나누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이웃을 생각하는 따스한 풍경으로 자리 잡아왔지만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책모임 식구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운한 일이 있어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낸 지인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는 말을 꺼낸 멤버의 말에서 햇살 같은 따스함이 전해졌다. 기온은 점점 더 내려가 추위에 몸을 웅크리게 되지만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주변의 온도를 높이는 연말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