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시인의 나라. 칠레

by winter flush

해학과 재치로 가득한 문장 속에 서늘한 역사의 줄기가 흐른다. 라틴 아메리카 어디쯤엔가 자리한 나라 칠레, 그 이상의 의미와 관심도 없던 그곳에 가 보고 싶은 열망과 호기심이 생긴 건 한 권의 책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등줄기처럼 길쭉하게 자리한 칠레는 위로는 건조한 사막과 아래로는 거친 바다와 빙하로 물결치는 광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 있으며, 열정과 낙천적 기질의 옆나라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과묵하고 진지한, 사색적이며 따스한 내성적인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詩분야에서 노벨문학상을 두 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시인의 나라'라는 타이틀이 어느 정도는 맞겠다 싶은 생각이 든 건 네루다의 우편부 마리오가 별생각 없이 내뱉는 메타포에 이르러서다.

"무슨 일 있나? 전봇대처럼 서 있잖아."

"창처럼 꽂혀 있다고요?"

"아니, 체스의 탑처럼 고즈넉해."

"도자기 고양이 보다 더 고요해요?" 26p.

메타포가 뭔지는 모르지만 이미 문학적 감성이 가득하다는 걸 우체부 마리오와 시인 네루다의 대화 속에서 감지한다. 네루다는 이 어설픈 청년에게 문학이 뭔지 詩가 뭔지, 이미 마리오 안에 존재하는 문학적 감성을 살짝 건드려 줄 뿐이다. 봉오리를 밀어내 꽃을 피우듯 사랑하는 여인 베이트리스를 위한 마리오의 마음은 시의 리듬을 타고 터져 나와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칠레민족에겐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70년대 초반, 그 광풍의 한가운데 비극의 죽음을 맞은 천재 시인 네루다를 작가는 천연덕스런 설정으로 허구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독재정권의 소용돌이 코앞, 한적한 이슬라 네그라의 평온한 바다풍경을 배경으로 시와 메타포와 사랑과 연애를 논하는 사이 빅토르 하라(칠레 민중가수)의 애잔한 선율처럼 고요한 저항의 리듬을 타고 어느새 네루다의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마리오를 마주하게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처럼 살아가던 우편배달부 마리오가 시인 네루다를 만나 이미 자신 안에 숨어있던 문학적 알갱이들을 보석처럼 빛나게 펼쳐가며 진정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읽는 재미가 가득한 소설이지만 그 끝은 암울하다. 그 시기 칠레의 역사가 그렇듯..

거대한 세계의 질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바뀌지 않는 질서의 흐름을 실감하며 인간의 마음이 그려내는 지도를 아프게 새기며 곱씹는다. 한 개인의 역사와 나라의 역사, 그리고 세계의 역사가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면서 현재 나는 이곳에서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잠시 멈춰 돌아본다. 재미와 재치가 가득한 문장의 겉을 훑으며 그 안에 흐르는 어두운 슬픔의 시간을 가늠하며 햇살 가득한 2월의 여름인 칠레를 상상하다 보니 내 안의 시적 감성도 새싹처럼 움트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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