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동화 이야기

by winter flush

아홉 개의 단편이 담긴 펭귄클래식의 <별에서 온 아이>는 오스카 와일드가 1884년 콘스턴스 로이드와 결혼하고 그 이듬해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으며 아이들을 생각하며 지은 동화다. 동화라기엔 다소 무겁고 기괴한 스토리도 담겨 있어 과연 이 글을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함인지 다소 의문이 들기도 했는데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이 세상에 대해 세세히 알려 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실감하게 된다. 글은 따스함도 느껴지지만 어딘지 모를 불편함과 허무마저 불러일으키는데 아이들을 위한 교훈적 내용이나 답을 주는 대신 밀도 있는 질문을 남긴다. 당시(빅토리아 시대) 어린이란 보호 대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보조하는 하나의 노동력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5세쯤 되면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어른의 몸으로 들어가기 힘든 굴뚝 청소라든지, 공장의 기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작은 몸이 감수해야 할 노동은 아이들의 몫이었고 임금도 턱없이 저렴했기에 가난한 아이들의 삶은 비참하고 굶주렸다. 그렇다면 상류층의 아이들은 그 환경이 좀 나았을까? 물질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누렸을지 모르나 정서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와 떨어져 유모나 가정교사와 시간을 보냈으며 감정 표현을 억제해야 했으며 품위와 통제가 우선시되었기에 부모의 사랑은 엄격함과 규율로 대체되었고, 아이들을 '생각하는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훈육되어야 할 존재'로 여겼다.(사실 이런 어른들의 오류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그러나 와일드는 아이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어른 세계의, 사회의 위선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로 아이들을 바라보듯, '아이의 세상에 대한 와일드의 공감 어린 온화한 시선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선(17p)'이라고 오스카 와일드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이언 스몰은 이 책의 서문에서 쓰고 있다. 와일드의 동화는 미학과 윤리가 충돌하는 지적인 실험실이라 주장한 그의 서문은 이 동화를 읽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애잔한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들 사이 멈춰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을 하며 읽다 보면 오스카 와일드가 담고 있는 인간 세상의 한 축을 응시하며 곱씹게 된다. 그의 동화에서 '희생'은 반복적으로 배신당한다. 보통은 헌신과 희생의 끝은 보상으로 귀결되지만 와일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희생은 요구받지 않았기에 보호받지 못한다는 그의 냉철한 시선은 반박하기엔 너무도 옳다. 그는 선함을 부추기지 않으며, 그 '선함'이 소비되는 방식을 고발하고 있다. 죽음보다 더한 가치, 절대적인 가치, 자기 소멸을 통해 완성되는 사랑의 의미를 담은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에서 나이팅게일(새)은 자신의 심장의 피로 물든 붉은 장미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피로 물들인 한 송이 장미의 가치는 생명과 맞바꾼 고결한 것이나 결국 도랑으로 내팽개쳐져 마차 바퀴에 깔려 버리는 신세가 된다는 가혹한 결말이나, <어부와 그의 영혼>은 또 어떤가. 마음이 없는 '이성'이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한지를, <별에서 온 아이>에서 아이의 외모가 아름다워질수록 성격은 오만하고 점점 더 사악해져 가지만 친구들은 불평 없이 따르고 차가운 마음에 물든다. 오스카 와일드는 "미가 도덕을 압도하는 순간 사회는 폭력을 선택적으로 눈감는다"라고 했다. 사회는 때로 외모를 도덕의 증거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저렇게 아름답다면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겠지'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번져있는 건 아닐까. 이 작품들은 동화라기보다는 동화의 형식을 빌린 냉소적인 고발처럼 느껴진다. 0세에서 100세까지 읽는 그림책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눈높이로, 어른은 어른의 눈높이로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내면에서 솟는 이야기와 토론을 벌이며 읽기 매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예언하듯 농축된 글 안에 비친 와일드의 남은 생의 과정이 중첩되어 읽는 내내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함이 못내 씁쓸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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