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마음 공작소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려다 마는 사람이었지요.
누군가 확실한 스승이 나타나 그분의 삶대로 잘 따라 살고 싶었고, 이끄는 대로 성실하게 배워 사는 삶이 안전하다고 여겼습니다.
혼자서 결정하고, 생각대로 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제겐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런 저의 삶에 균열이 찾아온 건 삼십 대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부터 였습니다.
순응하는 삶에 익숙했던 저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좀체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렇게만 살면 인정받을 거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말 잘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학교에서 통하던 이런 삶의 방식은 결혼을 하고 다른 삶의 시작과 함께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삶은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제 존재가 지우개처럼 지워져 나간다는 걸, 나의 소리는 허공에 묻혀 버리고 만다는 걸, 힘 있는 자아에 눌려 내 마음이 멍들어 간다는 걸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갇혀 사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나를 가둬 둔 것도 아닌데 스스로 큰 힘에 눌려 아무도 원치 않는 눈치를 보며 살게 되는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다가왔습니다.
초등학생 딸아이의 책을 빌리려 도서관에 자주 들락 거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음을 다스려 줄 책이 있을까 싶어 한 층 위 성인 열람실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제 인생의 균열을 메워 줄 '샘'이 될 수 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삶의 스승은 도서관에 가득했습니다. 이게 맞을까 싶었던 생각들에 확신을 얹어 주는 글귀들은 품은 생각에 자신감마저 얹어주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병원을 찾듯 도서관을 찾아 병든 마음을 처방해 줄 책을 고르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에 읽어야 할 책들도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읽은 책이 마음에서 사라질까 글로 남기려 딸아이가 만들어 놓은 블로그에 끄적끄적 글을 적어 올렸습니다. 일기를 쓰듯 제 마음을 정리한 글에 하나 둘 댓글이 달리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이 통하는, 영혼이 통한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제 이야기에 열심히 귀 기울여 주는 따스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큰 버팀목이 되었지요. 그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다 우연히 '차'를 접하게 되었고, 차는 또 한 번 제 인생을 확장시켰습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에 먼저 눈을 뜨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차'는 제 인생에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차와 사랑에 빠지면서 차와 관련된 책을 모조리 읽어내고 싶은 열정이 제 인생을 확장시킨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저는 차의 인문학에 빠진 것이지요. 차를 통한 역사와 문화, 차와 관련된 인물들에 말입니다.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빠지게 되면서 나약했던 내면은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다치게 하는 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허용할 수 없는 말을 내게 던지고 다치게 하는 것을 참는 건 겸손도 미덕도 아니며 그저 어리석음 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지키지 못한 건 결국 '나'였습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제 탓이었지요.
자신을 믿지 못하는 두려운 마음이 깨지 못하는 제 마음의 벽이었습니다.
그 마음의 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두려움의 고리가 느슨해지고 그 자리에 조금씩 내 자신을 믿는 마음이 채워지면서 전에 없던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라는 마음의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무엇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책'을 내보겠다는 의지로 발전했습니다. 제 글이 책이 되어 나올 거라는, 그 꿈이 이루어지리란 기대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지요.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 퇴근 시간이 다 되어버린 놀라운 경험도 하면서 '쓴다'는 것의 마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 년이 넘게 읽고 쓰고를 반복하다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글을 써냈습니다. 누구의 검증도 받지 않은 오롯한 나만의 글이 어찌 책이 되어 나올 수 있을까, 순간 무모한 시간을 보낸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일 열 곳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매일 아침 메일을 보냈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딱 열 곳씩 말입니다. 이 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요. 한 출판사에서 계약을 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마치 꿈처럼 느껴졌지요.
그렇게 생각지 못한 저의 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예전의 겁 많던 저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입니다.
도장을 들고나가 출판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하고 돌아 나오는 길, 다리에 힘이 풀리더군요.
혼자서도 이렇게 일을 행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의지할 누군가가 아니라 내 자신을 믿으며 용기 있게 걸어간 그 길이 따스한 빛으로 느껴졌습니다.
늘 다니던 도서관, 그 옆 동네.
다정한 기운이 흐르는 주택가 골목을 산책하며 이런 곳에 나만의 작업실이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선이 비슷한 사람끼리 함께 차를 마시고 마음을 나누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입니다. 나만의 아늑한 공간의 꿈은 누구나 한 번씩 품게 되지요. 그런데 정말 제 마음에 드는 그렇게 작고 아담하고 조용한 공간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인적이 드문 아주 조용한 곳이었지요.
그 공간은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제가 찾아간 것이 아니라 제게 다가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그렇게 느껴졌을까요?
제가 진정 '용기'가 없던 사람이었을까요?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는 힘은 바로 내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만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얻어낸 그 자리에 선물처럼 다가온 공간.
이곳은 마음이 쉬어가는 곳입니다.
지친 마음이 쉬면서 함께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서로 공감해주는 다정한 작업실.
이곳에서 빚어낼 따스한 인연에 제 마음이 미리 반짝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한 발 내딛는 용기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