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읽고

by 겨울밤

작년 말, 동생을 잃었다. 갑작스런 사별의 충격에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했지만 수많은 질문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동생은 왜 갑자기 떠났을까. "안녕" 두 글자만 남기고 유서도 없이 떠난 이유를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자살의 원인을 분석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리고 이렇게 삶이 무너져내리는 상실의 경험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통과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사별자의 에세이를 파고들었다. 사람마다 애도의 방식이 다르다지만 상실 후에 겪는 감정이나 거쳐가는 단계―엘리자베스 퀴블러가 <상실 수업>에서 이야기했듯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들은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 그들이 어떻게 감정을 다루고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지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그 중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글도 글이지만 쓰인 방식에 공감할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은 작가가 어머니를 잃고 고통 속에서 적어 내려간 메모 모음집이다. 그래서 구조가 있는 에세이라기보다는 마치 트위터나 스레드에 올라올 법한 날것의 감정이 담긴 문장들 같았다. 글쓰기가 업인 작가조차도 글만이 감정을 흘려보낼 통로라는 걸 알지만 2주간 한 자도 적지 못하거나, 겨우 한 문장만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 감정의 울혈 상태를 다른 감정으로 바꾸고, 위기를 변증법적으로 완화하는 건 글쓰기 뿐"이라고. 나도 내게 일어난 일들과 나를 통과하는 감정들을 글로 옮겨야 이해하고 수용하고 흘려보낼 수 있음을 알지만 지난 8개월간 겨우 블로그에 두 개의 글을 올리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 꼭 종이 한 페이지를 꽉 채우는 장문의 글일 필요는 없지. 무엇이든 떠오르는 생각, 진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문장에 담을 수만 있다면, 아니 한 단어라도 쓸 수 있다면 된 거지. 롤랑 바르트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써 보기로 했다. 어느 날은 한 단어, 한 문장밖에 적지 못하더라도. 익명에 기대어 자유롭게 내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곳에. 마음 속에서 슬픔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는 없더라도 안전하게 흘려 보낼 수는 있으니까. 오히려 흘려보내지 못한 감정들은 안에서 넘쳐 흘러 더 큰 고통이 되니까. 그러니 힘들더라도 써야만 한다.


아마도 나만의 애도 일기가 될 테지만, 이 글이 혹시라도 어떤 사별자에게 가 닿는다면 위안이 될 수 있겠지. 결국 사별의 고통을 위로하는 건 그 고통을 겪어본 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글로 표현되지 못한 마음을 구체화 해 주는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묘한 안도감이니까. 그리고 몇 자 쓰지 못할 거라는 건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쓰다 보면 봇물이 터진 것처럼 한없이 쓰게 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