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타투

내 몸에 남긴 기억의 표식, 그리고 삶의 이정표

by 겨울밤

타투에 거부감은 없었다. 왠지 위압감을 주는, 등이나 팔 전체를 뒤덮은 용 문신만 아니라면. 타투 또한 미용의 한 영역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선뜻 도안을 골라 평생 몸에 남는 타투를 하는 용기가 멋지다고도 생각했다. 그치만 막상 내가 타투를 받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언젠가의 미래에 타투 디자인이 촌스러워진다거나 싫증이 나 버릴 게 꽤나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시처럼 내려오곤 한다. 그렇게 파워리프팅에 도전했고, 하프마라톤과 풀마라톤을 목표로 달리고 있으며, 별안간 탱고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투도 그랬다.

작년 말 동생을 잃은 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캄캄한 가운데에도 앞으로 내 삶이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거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동생 뿐 아니라 과거의 나도 잃어버린 듯 했다. 내게 의미 있던 많은 것들이 무의미해지기도 했다. 마치 허리케인에 폐허가 된 집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쌓아올려야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

애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We don't move on from grief. We move forward with it."이라는 말이 특히 인상 깊었다. Move on은 그 사람을 잊고 새 출발을 하는 느낌이라면 Move forward with에는 그 사람의 기억과 함께 나아간다는 뜻이 내포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삶에 크게 굴곡이 진 이 시점에 어떤 표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계절에 나무에 진한 나이테가 생기듯, 내 몸에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 흔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평생 동생을 기억하고 동생 몫까지 잘 살겠다고. 지금 당장은 무기력하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언젠간 다시 삶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겠다고. 활기차게,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그렇게 첫 타투를 3주 간격으로 세 개나 받게 되었다.

첫 번째 타투는 동생 귀 밑에 있던 달의 위상.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모습이 다섯 개의 달에 담겨 있는 모습이다. 물리적으로는 동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눈에 보이는 동생의 흔적을 지니고 싶었다. 평생, 내 피부 아래. 다행히 동생에게 타투를 해 준 같은 타투이스트와 연락이 닿았다. (동생의 인스타 dm을 하나하나 뒤져야만 했다. 핸드폰 비밀번호가 집 비밀번호와 같아 알고 있었던 게 어찌나 다행인지.) 6년 전 작업임에도 도안을 아직 보관하고 계신다 하여 같은 도안으로 받기로 했다. 똑같은 위치에 받고 싶었지만 눈에 띄는 자리라 부모님이 볼 때마다 속상해 하실 것 같았다. 타투 예약을 하고 나서도 위치를 한참 고민했다. 눈에 띄지 않을 부분 중에서도 심장과 가까운 곳, 왼쪽 쇄골 밑에 새기기로 했다. 그림을 몸에 새기는 건 생각보다는 덜 아팠고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타투를 받고 며칠을 내리 앓았다. 첫 타투라 잔뜩 긴장한 데다가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였어서 그런 듯 싶었다. 목과 어깨가 잔뜩 굳어 두통이 심한 가운데 슬픔이 뒤섞여 꽤 힘든 주말을 보냈다. 그래도 작업을 해주신 타투이스트 분께서 사정을 듣고는 조심스레 진행해주시고, 예약금 외에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셔서 슬픔이 올라오는 와중에도 마음이 따뜻했던 기억이다.

두 번째 타투는 부드럽지만 힘찬 파도다.

나는 1년에 두어번은 꼭 강릉에 가서 동해바다를 보고 오곤 한다. 짙푸른 바다에 부서지는 파도를 한참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에너지가 차오르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유연한 곡선을 이루지만 때론 해변의 모래를 쓸어가거나 절벽을 깎아내기도 하는 힘이 멋지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물은 생명의 근원이지 않은가. 물론 바다는 더 자주 보러 가게 되겠지만, 내 몸에 두고 보면 힘들 때마다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타투 이미지 검색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다. 다양한 파고로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된 파도. 이 그림이라면 평생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작업하시는 스튜디오도 집에서 20분 거리로 멀지 않은 곳으로 가까웠다. 그래서 바로 예약을 진행했다. 한번에 관리를 끝냈으면 해서 첫번째 타투와 같은 주말에 받으려다 일정이 맞지 않아 한 주 뒤로 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 여러모로 잘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 타투를 받는 게 조금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러 쉐이드의 푸른 색 잉크로 섬세하게 색감 표현이 들어가 작업이 거의 세 시간은 걸린 데다가, 첫번째 타투와의 균형을 고려하여 오른쪽 견갑골 위에 받았더니 첫번째 타투보다는 통증이 심했다. 통증이 심하기로 이름난 부위는 아니었는데 나는 견갑골이 워낙 도드라져 더 아팠던 듯 싶다. 그래도 타투를 받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첫번째 타투보다는 색감도 그림도 희망찬 느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잘 살겠다는 의지를 담아 받은 일종의 부적이라 그런 것 같다.


동생의 기억을 담은 타투 하나, 삶의 의지를 담아 내가 고른 타투 하나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오른쪽 견갑 부위는 내가 쉽게 볼 수 없는 부위였다. 나만 보려고 한 타투지만 나도 쉽게 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하루에도 여러번 이 삶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럴 때마다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세 번째 타투를 받기로 했다.


세 번째 타투는 섬세하게 잎맥이 그려진 은행잎이다.

은행나무는 고생대 말, 약 2억 9천만년 전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여러번의 기후 변화로 공룡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지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린다고 한다. 수명이 몇 천년으로 길기도 하지만 병충해나 대기오염에 강하 심지어 불이 붙더라도 두꺼운 껍질이 방화복 역할을 해 살아남는다고. 올해 3월 경북 지방에 큰 산불이 났을 때도 까맣게 탄 은행나무에서 새 잎이 돋아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꼭 천년만년 살 필요는 없지만 은행나무의 생존력과 회복력을 배우고 싶었다. 일종의 과학적 샤머니즘이라고 해야 할까. 은행잎을 몸에 새긴다고 내가 은행나무가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은행잎을 고른 마음은 상기할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오른팔 안쪽에 은행잎을 새겼다.

일종의 의식을 치루듯 타투를 세 개나 받았지만, 한 순간에 슬픔이 잦아들며 의욕과 열정이 솟아나지는 않는다. 때때로 무기력하고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나에 대한 분노가 올라오기도 하며, 삶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안도할 때쯤 슬픔의 폭풍에 휩싸이기도 한다. 애도라는 건 단시간에 헤매지 않고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는 작업과는 거리가 멀기에. 사랑한 만큼 겪어야 할 슬픔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긴 시간에 걸쳐 파도처럼 찾아오는 슬픔을 직면해야만 하는 것 같다. 슬픔은 절대 작아지지 않고 다만 그 슬픔을 담고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그릇이 커지는 게 애도의 작업이라 한다. 그래도 내게 새겨진 세 개의 타투는 앞으로 힘들 때마다 붙잡을 하나의 밧줄이 되어줄 것이다. 그 밧줄을 붙잡고 살다 보면 때론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날들이 있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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