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별 후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들

by 겨울밤

친구들


사별 초기는 일종의 공황 상태다. 매일 드나드는 집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멍하니 현관 앞에 서 있기도 하고, 평소 잘 먹던 음식도 들어가지 않는다. 상실의 충격이 마음 뿐만 아니라 몸에도 타격을 가하기에 그저 일상을 살아내는 것 조차 무척이나 힘이 든다.

다행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밥을 잘 넘기지 못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게장을 여러번 사다 날라준 친구가 있었고, 혼자서는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친구들이 돌아가며 집에 와서 옆에 있어 주었다. 여럿이 발을 벗고 유품 정리와 가구를 옮기는 작업을 도와주었고, 엉망이 된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 내가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준 친구도 있었다.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백 마디 말보다 그 사람이 잘 자고, 잘 먹고, 편히 쉴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구나- 싶었다. 나 대신 일상을 돌봐준 친구들 덕에 그 시간들을 지나올 수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존재


사별 초기 살뜰히 챙겨준 친구가 '자조모임'이라는 것이 있다고 일러주었다. 형제나 자매, 부모나 자식을 자살로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 공감과 이해를 주고받는 곳이라고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자작나무'라는 자조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동생을 잃고 2개월차, 아직 사별의 경험이 피부로 느껴지지 않을 무렵 처음으로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2개월 전 동생을 잃은 OOO입니다."라고 한 마디를 겨우 이야기하곤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뱉어놓은 말도, 내가 자리한 공간도 사별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 누구도 섣불리 위로의 말을 던지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침묵 가운데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이 위로가 되었다. 한 마디 말 없이도 거기 있는 모두가 내게 공감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그 뒤로도 여러번 모임에 나갔다. 내가 어떤 말들을 했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서로 연민과 공감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동생이 떠나고 한동안 집에 칩거했다. 겨울이었으니 밖은 춥고 볼 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다 날이 따뜻해지고 조금씩 바깥 산책을 시작했다. 그러다 5월의 어느 날, 주변을 둘러보자 화사한 봄 햇살, 푸른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신록의 잎사귀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은 이전에도 아름다웠겠지만 겨우내 사별의 슬픔에 빠져 있었어서 그런지 유독 찬란하게 느껴졌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봐,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래도 아직 살아볼만하지 않아?"

'경이롭다'는 단어는 희귀한 광경이나 웅장한 대자연을 표현할 때만 쓰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사별 후 일상적인 아름다움조차 내겐 경이로 느껴진다. 사별의 고통이 날 고립시키지만 그 와중에도 자연의 색감이, 빛이, 소리가 오감을 통해 마음에 스며든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더 감수성이 풍부해진 건지도 모르지.


고양이들


보드라운 털의 촉감, 온기, 두근거리는 심장을 평온하게 해 주는 가르릉거리는 소리까지. 고양이들은 존재 자체가 위로임에 틀림없다. 둘이 함께 키워냈기에 동생의 기억을 강력하게 소환하고 부재를 강조해준다는 것만 제외하면.


달리기


슬픔에 가라앉다 보면 숨 쉬기조차 답답하고, 무기력이 나를 덮쳐 한없이 침대로 가라앉게 만든다. 그럴 때 달리기는 희미해지는 내 존재에 심폐소생술을 해 준다. 기념일 반응으로 한창 힘들던 4월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침대를 박차고 나가 한강공원을 달린 적이 있었다.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고 기도를 드나드는 공기가 따갑게 느껴질 만큼 뛰고 나니 침대에 누워있을 땐 희미하던 내 존재가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살아있음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해야 하나. 달리기를 마치면 한층 가벼워지기도 한다.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설정하고는, 꾸준히 달리기를 하면서 그래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작은 효능감을 얻을 수 있었다. 멈춰있던 삶이 아주 조금씩 굴러가는 느낌. 하지만 달리기에도 한계는 있다. 당장의 기분, 그리고 체력을 끌어올려 주지만 감정을 흘려보내기에는 섬세함이 부족한 느낌. 슬픔을 일시적으로 해소해 주는 것에 가깝다.


무작정 걷기


사실 난 걷기를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낯선 동네를 찬찬이 구경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운동으로서는 걷기보단 뛰기를, 긴 거리를 걸어야 할 때엔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하는 걸 선호했다. 그런 내가 마음이 괴로우니 그저 걷고 싶더라. 동생 생일 다음날이었다. 며칠간 우울했던 마음이 그 날 피크를 찍었다. 퇴근 후 무작정 걷기로 했다. 직장에서 집까지 15km. 뛰어본 적도 없는 거리였지만 순례를 하듯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평소 자차로 퇴근하던 길을 뚜벅이의 시선으로 보니 생경했다. 마침 적당히 선선한 날씨. 해질 무렵 노을빛으로 반짝거리는 한강과 분홍색으로 물들다가 어두워지는 하늘이 참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도중에 식당에 들러 저녁도 먹고, 조금 더 걷다가 만난 펍에서 맥주 한 잔도 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신기하게도 내딛는 발걸음마다 괴로움에 단단히 뭉쳐있던 마음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 같았다. 다섯 시간이나 걸려 집에 도착했더니 잠이 잘 오는 건 덤. 이후로는 더워져서 그렇게 걷지는 못했지만. 선선한 봄가을에 마음이 묵직하고 답답하다면 종일 걸어볼 만 한 것 같다.


여행


사별자에게 여행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다. 애도의 현장을 떠난다고 사별의 현실이 잊혀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여행지는 잠시 숨을 돌릴 공간이 된다. 낯선 공기와 풍경, 말소리와 이국적인 냄새 같은 것들이 오감을 자극해 현실에만, 그 순간에만 머물게 한다. 비행기 티켓이 환불되지 않아 억지로 떠났던 홍콩이 그랬고 도망치려 내 발로 떠난 발리가 그랬다. 그 곳에서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회복하고, '사별자'라는 자아를 잠깐 내려놓고 원래의 나를 마주할 수 있다. 물론 여행이 끝나면 혹독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지만. 그래도 슬픔으로부터의 짧은 휴식기를 거치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탱고


발리에서 돌아온 후, 여행이 준 짧은 평화가 끝나버리기 전에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걸 배워보고 싶었고 주짓수를 배우려다 탱고로 급 선회했다. 탱고에 한창 빠져있던 친구의 추천이 한 몫 했다. 그리하여 탱고가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첫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다행히 탱고는 나와 결이 잘 맞는 춤이었다. 라틴다운 열정이 있지만 묘한 슬픔이 음악에 묻어 있었고, 서로를 안고 함께 걷는 하체 위주의 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3개월, 매주 학원에 출석해 탱고를 배웠다. 때로는 마음이 쓰리도록 슬플 때에도 탱고 음악을 들으며 한 스텝씩 내딛다 보면 슬픔이 조금은 가벼워지곤 했다. 걷거나 달릴 때보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도 적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아브라소(손을 맞잡고 살짝 안는 자세)도 익숙해졌다. 아직은 어색함이 가시지 않았지만 손 끝으로, 어깨로 전해지는 타인의 온기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


피아노


8월에 슬픔의 두번째 파도를 맞이하여 이제 더 이상 감정을 눌러담기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비교적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직장에서조차 오열한 이후로는 더더욱. 감정이 빠져나갈 통로가 더 필요했다. 달리기는 감정을 흘려보내기보단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것에 가까웠고, 탱고 음악에 따라 움직이는 몸짓이 도움이 되었지만 주 1회 한두시간 수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피아노를 떠올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손끝으로 표현하다 보면 감정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별의 아픔을 겪은 이후로는 감수성이 풍부해져 같은 곡도 이전과 다르게 들리기도 했기에, 마음과 공명하는 곡들을 연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집 근처 피아노학원을 3개월 등록했다. 20년만에 앉아보는 피아노 앞이지만 손가락이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 오랜만에 두드려 보는 피아노 건반이 묵직해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연습실에서 동생과 함께 합주했던 곡을 연주하며 안전하게 울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피아노 건반으로 감정을 흘려보내고 나니,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글쓰기


어쩌면 지면은 생각과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글로 형체를 가지면 더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서 나도 사별 후 8개월 동안은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일을 하고, 슬픔을 다독이기 위해 달리고 춤을 추고 여행을 떠나는 와중에도 글쓰기만은 피하고 싶었다. 평소 머리가 복잡할 때면 글로 흐트러진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곤 했던 나였기에 언젠가는 써야만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다른 감정의 통로들을 마련하고 브런치라는, 익명에 기댈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자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글자로 쏟아져 나온다. 가장 아픈 기억들은 아직 덜 건드려서인지 감정적으로도 아직 견딜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무작정 적어내려가다 보면 내가 애도 과정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한눈에 보일 것 같다. 타투처럼 나중에 내가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말이다.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


신의 존재는 여전히 믿지 않지만, 영혼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동생의 영혼이 아직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발리에서 만난 요가 선생님의 말처럼,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건너갔을 거라고.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믿음이 아직 굳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믿기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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